저명한 신경의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올리버 색스는 2015년 1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회고록 초고를 출판사에 넘긴 게 불과 2주 전이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육성 회고록…다큐 '올리버 색스:그의 생애'
죽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한 색스는 같은 해 2월 뉴욕타임스에 '나의 생애'라는 에세이를 기고했다.

남은 시간을 "우정을 깊게 하고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더 많이 쓰고 여행하면서 인식과 통찰력의 새 지평에 다다르려 한다"는 다짐을 밝혔다.

그리고 그는 카메라 앞에 섰다.

"책에 적지 않은 내용이 많다"며 때로 듣고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이야기를 웃으며 꺼내놓는다.

다큐멘터리 '올리버 색스:그의 생애'는 2005년 눈에 생겼던 흑색종이 간으로 전이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인 2015년 2월 초, "기억력이 12초밖에 안 되니 질문을 짧게 해 달라"는 색스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육성 회고록…다큐 '올리버 색스:그의 생애'
색스는 '치료해야 하는 건 질병이 아닌 환자'라며 희귀한 신경질환을 앓던 환자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따뜻하고 섬세한 언어로 전했던 의사이자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런던의 중산층, 유대교 의사 부모 아래서 천재적인 능력을 갖추고 태어나 명문 학교를 거친 남부러운 것 없는 화려한 이력 뒤, 상처와 좌절로 가득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색스와 주변 사람들은 비교적 담담한 목소리로, 때로 젖은 눈빛으로 전한다.

함께 기숙학교에 보내졌던 형이 조현병을 앓았고, 산부인과 의사였던 어머니는 아직 어린 색스에게 사산한 아기를 해부하도록 했다.

색스가 동성애자임을 알고 "혐오스럽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한 어머니의 말은 평생 그를 억눌렀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육성 회고록…다큐 '올리버 색스:그의 생애'
동성애자에게 가혹한 처벌이 가해지던 당시 영국 사회와 종교, 어머니를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그는 근육을 키우고, 가죽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연애에 실패한 뒤 약물에 빠져든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라 마약에 취한 채 읽기 시작한 책에서 영감을 받아 첫 책 '편두통'을 집필하며 일과 삶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이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학계에서 아웃사이더, 이단아로 배척당했던 그는 기면성뇌염 환자들에게 엘도파를 투여해 수십 년 동안 의식을 잃었던 환자들을 깨어나게 한 '기적'과 이후의 부작용에 따른 이야기를 담은 '깨어남'이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진 이후에야 인정받기 시작했다.

"일과 결혼했다"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 온 색스는 세상을 뜨기 불과 몇 개월 전에야 커밍아웃했다.

70대 후반에 만나 생의 마지막까지 곁을 지켰던 연인 빌 헤이스와 색스가 직접 그들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마지막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가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전하는 뉴욕타임스의 기고문의 마지막 문장은 여전히 울림이 크다.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이 있는 존재,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고 이는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습니다.

"
색스는 2015년 8월 30일,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8월 2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마지막을 준비하는 육성 회고록…다큐 '올리버 색스:그의 생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