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가·춘향가 녹여내…"판소리의 원형 보여줘야 했다"

'소리꾼' 조정래 감독 "'서편제' 본 후 간직한 꿈 이뤄졌다"
"대학교 과제로 영화 '서편제'(1993)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영화도 하고 우리 소리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조정래(47) 감독은 영화 '소리꾼'(7월 1일 개봉)의 시작을 이같이 설명했다.

최근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조 감독은 "감개무량하다는 말 외에는 떠오르는 말이 없다"며 27년간 간직했던 꿈을 마침내 실현한 소감을 전했다.

"'서편제'를 본 이후부터 저는 '소리에 미친놈'으로 통했어요.

소리도 배우고 북도 배웠죠. 북은 정식으로 배워서 공연도 많이 다녔는데, 처음으로 공연하러 간 곳이 위안부 할머니들께였어요.

그렇게 해서 만들게 된 영화가 '귀향'이었고요.

여러모로 '소리꾼'은 제 사명 또는 숙제 같은 영화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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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조정래 감독 "'서편제' 본 후 간직한 꿈 이뤄졌다"
조 감독이 대학 때 쓴 단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탄생한 '소리꾼'은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소리꾼 학규가 납치된 아내를 찾기 위해 딸과 함께 조선 팔도를 떠도는 내용을 그린다.

'심청가'와 '춘향가'를 기반으로 주인공이 지어낸 이야기에 곡조를 붙여 부르는 노래가 판소리의 기원이라는 가설을 제시하는 영화는 '한국적인 뮤지컬'을 표방한다.

조 감독은 "우리가 아는, 뻔한 이야기지만, 마치 처음 본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영화에 판소리 말고도 민요, 정가(正歌) 등 다양한 장르가 나와요.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흥을 관객이 영화에서 패키지로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소리꾼'은 판소리의 '프로토타입'(prototype, 원형)을 보여줘야 했다"며 "참고 자료가 없으니 음악 감독이 촬영 전에 음악을 80% 가까이 만들어 놨다"고 강조했다.

주인공에는 영화 연기가 처음인 국악인 이봉근을 캐스팅했다.

"이봉근 씨는 전에 뮤지컬에서도 봤는데, 연기를 꽤 잘하더라고요.

오디션에선 긴장하고 떨었지만, '물랑 루즈'(2001)의 이완 맥그리거와 '맘마 미아!'(2008)의 피어스 브로스넌이 떠오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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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판소리 고법 이수자 고수로 활동해온 조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직접 북을 치며 '북 치는 감독'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는 "(극 중 고수 역을 맡은) 박철민과 내가 북을 반반씩 쳤다"고 웃었다.

'소리꾼'은 여타 고전과 마찬가지로 권선징악을 따른다.

조 감독은 "권선징악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선조들이 삶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나 싶더라고요.

분명 이번 영화도 해피엔딩인데 그 안에는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현실이 들어있거든요.

한과 흥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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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두레소리'를 연출하고 2016년 영화 '귀향'으로 큰 관심을 받은 조 감독은 차기작으로는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아이누족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귀향' 전 세계 상영회를 다니면서 관심을 갖게 된 이야기예요.

아직 시나리오는 쓰기 전이고요.

저는 연출할 능력은 안 되고, 가능하면 한국과 일본 감독이 협업해서 작업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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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조정래 감독 "'서편제' 본 후 간직한 꿈 이뤄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