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아시아나항공 제공.
사진=아시아나항공 제공.
마켓인사이트 8월 7일 오후 4시 27분

산업은행은 그동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에 대해 “플랜B는 없다”고 수차례 공언해왔다. 이런 산은 측 분위기가 최근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에서 활로를 찾지 못하면서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가치가 더 훼손되기 전에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아시아나 화물사업부 매각안에 부정적

[단독] "아시아나 알짜 팔면 대한항공과 합병 의미없다"…'플랜B' 만지작
7일 IB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이달 초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 통과를 위해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 매각 방안을 산은에 제안했다. 미국과 EU 등이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화물 분야 독점이 심화할 수 있다며 허가를 내주지 않는 데 따른 대응책이다. 화물사업은 2021년 아시아나항공 항공운송 매출의 72.5%를 차지하는 알짜 사업부다.

대한항공은 자사와 아시아나항공이 갖추고 있는 일부 미국 및 유럽 노선을 국내 다른 항공사에 넘기는 방안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이 같은 내용도 미국과 EU 등 경쟁당국에 제출하겠다고 이달 초 산은에 보고했다.

산은 경영진은 신중한 입장이다. 화물사업부를 매각하고, 장거리 핵심 노선을 넘기는 건 아시아나항공의 핵심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기업결함 심사를 통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방식의 합병은 ‘아시아나항공 정상화’라는 본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게 산은 측 생각이다.

대한항공의 대응책을 이행하더라도 미국과 EU 등 경쟁당국이 기업결합 허가를 내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경쟁당국은 허가 이전에 독점 우려를 해소할 대책을 선조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선조치 후에도 허가를 내주지 않을 가능성은 산은 경영진에 적지 않은 부담”이라고 말했다.

산은 구조조정 실패 책임론 ‘솔솔’

산은 내부에선 여객 슬롯(특정 공항에 이착륙할 수 있도록 배정된 시간대) 반납에 이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 논의가 구체화되자 더 이상 무리하게 합병을 추진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진행 중인 독과점 심사가 가장 큰 부담이다. 미국 법무부(DOJ)는 지난 5월 대한항공에 “독점을 해소할 경쟁 항공사가 없으면 합병 승인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대한항공은 저비용항공사(LCC)를 키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제안했지만 DOJ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EU 집행위원회(EC)도 지난 6월 말 기업결합 관련 조사를 중단하고 이달 초로 예정됐던 최종 승인 결정 시점을 연기했다. 업계에선 이미 이들 경쟁 당국이 불허 의사를 우회적으로 전달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업계에선 합병이 더 지연될 경우 현재 산은 경영진의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미 산업계에선 산은이 주도하는 국가 주도의 기간산업 구조조정이 대부분 실패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항공업 구조조정에 앞서 HD현대그룹과 대우조선해양 간 조선업 ‘빅딜’도 EU 규제당국에 의해 좌초된 바 있다. 한진해운을 파산으로 몰고간 해운업 구조조정도 대표적 실패 사례로 거론된다.

합병 최종 무산되면 플랜B 가동

제3자 매각 등 플랜B는 기업결합에 대한 미국과 EU 등 경쟁당국의 최종 결론이 나와야 본격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합병 절차가 진행 중에 다른 원매자를 찾아 매각을 논의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합병 승인 여부는 연내 결론이 날 전망이다. 합병이 최종 무산될 경우 산은은 즉시 다른 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보인다. 앞서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3개월 만에 한화그룹에 대우조선해양을 넘기는 내용을 담은 빅딜을 단행했다.

차준호/박종관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