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SK온 포스코홀딩스를 비롯한 국내 간판 기업 25곳이 60조원 규모의 투자 세부 계획을 공개했다. 창고에 재고 물량이 가득 들어찬 데다 수출길도 좁아졌지만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들의 투자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배터리·친환경차·바이오 집중 투자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대차 SK온 포스코홀딩스 LG전자 현대제철 등은 58조622억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내놨다. 시가총액 상위 100개사(관계사 포함) 가운데 지난해 사업보고서와 올 1분기 시설투자 공시를 내놓은 기업 25곳 기준이다. 투자 시작 시점은 올해부터다. 투자 종료 시점은 2023~2026년으로 기업별로 다르다.
SK온 19조·현대차 10조 "통큰 투자로 위기 돌파"
2011년부터 전기차 배터리 설비 등에 10조4938억원을 투자한 SK온은 올해부터 2026년까지 19조3517억원(합작 투자 포함)을 추가로 투자할 계획을 세웠다. 계획을 밝힌 기업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현대차(10조5267억원) 포스코홀딩스(8조2093억원) 삼성바이오로직스(1조9801억원) 현대제철(1조7201억원) HMM(1조4128억원) 현대오일뱅크(1조1463억원) 한국항공우주산업(KAI·1조1448억원) 롯데쇼핑(1조365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 기업의 투자는 배터리 소재와 친환경차, 바이오 등 국내 경제를 견인하는 신성장 산업에 집중됐다. 현대차는 올해만 10조5267억원을 연구개발(R&D) 등에 쏟아부을 계획이다. 작년 투자액(8조4897억원)보다 23.9% 많은 규모다. 이 회사는 올해 R&D에만 4조1502억원을 투자한다. 작년보다 17.6% 큰 금액으로 역대 최대다. 전기·수소차 등 친환경차 R&D에 역량을 쏟을 것으로 전망된다.

포스코홀딩스는 2차전지 소재에 사활을 걸었다. 올해부터 8조2093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투자액(2조7876억원) 대비 3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3조9117억원을 2차전지 소재에 투자하기로 했다. 포스코그룹의 주력인 철강부문 투자(3조3298억원)를 넘어서는 규모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올해부터 2025년까지 인천 송도 제2캠퍼스(5~8공장) 신설에 1조9801억원을, 현대제철이 올해 1조7201억원을 코크스건식소화설비(CDQ·코크스 설비에서 폐열을 회수해 증기·전력으로 생산하는 설비) 등에 투자하는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팍팍한 투자 환경 뚫는다

국내 주요 기업을 둘러싼 투자 환경은 녹록지 않다. 고금리에 재료비와 인건비가 치솟은 데다 재고·수출 지표마저 역대 최악 수준이어서다. 이 같은 악조건에도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함 때문에 꾸준한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는 게 산업계 안팎의 분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판매가 부진한 여파로 지난 1월 제조업 재고율(출하 대비 재고 비율)은 120.8%로 작년 12월보다 2.2%포인트 상승했다. 1998년 7월(124.3%) 후 24년6개월 만의 최고치다.

기업 투자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책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반도체·2차전지·디스플레이 등 첨단 전략산업에 속한 기업 110곳의 자금 사정을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 10곳 중 7곳(70%)은 필요 투자자금의 60%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문태 대한상의 산업정책팀장은 “기업의 자금 사정 개선을 위해 정책금융 확대, 보조금 지원 등 다양한 정책 포트폴리오가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