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신세계 스틸컷
사진=영화 신세계 스틸컷
멋진 슈트를 차려입은 제임스 본드. 007 영화 속 주인공인 그가 고뇌의 순간 담배를 꺼내 라이터를 켤 때마다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소리가 있다. ‘퐁!’ 본드뿐만 아니라 영화 신세계 속의 이정재(사진)도, 독전의 김성령도 손에 쥐고 있던 건 듀퐁 라이터다. 뚜껑을 열면 나는 ‘클링 사운드(Cling Sound)’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상징적인 소리. 귀족과 지식인층을 위해 만들어진 듀퐁 라이터엔 그렇게 150여 년의 역사가 쌓여 있다.

왕족이 사랑한 듀퐁의 전시회

'카지노 룰렛' 입은 듀퐁…150년 역사를 트렁크 하나에 담다
올해 150주년을 맞은 브랜드 듀퐁은 한국에서 조금 색다른 공간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150주년 기념 트렁크 로드쇼’라는 이름으로 롯데백화점 본점 등 주요 지점과 갤러리아 타임월드점 등에서 오는 5월 18일까지 열린다. 이 로드쇼에선 듀퐁의 기술이 집약된 라이터 모델부터 특별 제작한 트렁크(여행용 가방)까지 전시한다.

이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한 트렁크는 1950년 태국의 시암 여왕을 위해 만든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 총 4개의 층으로 이뤄진 케이스에는 듀퐁 아카이브에 보관된 라이터와 펜이 담겨 있다. 1952년 만들어진 최초의 가스라이터부터 럭셔리 볼펜까지 듀퐁의 기술이 집약된 디자인과 상품들을 볼 수 있다.

전시되는 상품들은 지금의 듀퐁을 있게 한 라이터들이다. 주머니에 휴대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크기로 만들어진 최초의 가스라이터 ‘라인 1(Ligne1)’과 클링 사운드가 특징인 ‘라인 2(Ligne 2)’의 초기 모델, 가벼운 무게와 슬림한 사이즈로 여성을 겨냥한 ‘라인 D(Ligne D)’ 등 연도별로 다양한 히스토리가 담긴 라이터를 선보인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전시한 1973년 최초의 명품 볼펜 ‘클래식(Classique)’과 유명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모티브로 한 ‘개츠비 펜’도 이번 전시회에서 만나볼 수 있다.

150년 역사의 듀퐁, 시작은 트렁크

(위)카지노 포켓 컴플리케이션 라이터. (아래)듀퐁의 150주년 트렁크에 들어있는 올림피오 만년필(붉은색), 피델리오 볼펜(파란색)
(위)카지노 포켓 컴플리케이션 라이터. (아래)듀퐁의 150주년 트렁크에 들어있는 올림피오 만년필(붉은색), 피델리오 볼펜(파란색)
듀퐁의 역사는 1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2년 프랑스에서 시몽 티소 듀퐁이 창립한 가죽 제품 회사가 시작이다. 최근에는 럭셔리 라이터 브랜드로 알려졌지만, 과거에는 여행용 가방을 주로 만들었다. 가죽 제품을 시작으로 고위 공무원들의 이니셜을 각인한 지갑과 가죽 제품을 주로 생산했다. 당시 럭셔리 액세서리의 전당이던 루브르 상점에 공식적으로 납품했다.

1920년대엔 독창적이고 호화로운 여행 가방을 제작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태국의 시암 여왕은 검정 악어 가죽으로 만든 듀퐁 여행 가방을 소유했다. 이집트의 왕과 왕비, 이란 왕비, 덴마크 여왕 등 각국 왕족과 귀족 가문으로부터 주문이 이어지면서 명성을 얻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결혼식 선물로 사용한 여행 가방, 2011년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 선물용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이런 역사를 바탕으로 2011년에는 뛰어난 기술로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에 부여하는 EPV(Entreprise du Patrimoine Vivant) 마크 인증을 받았다. 이후 프랑스 정부 공식 납품 업체로 인정받아 프랑스를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로 거듭났다.

9600만원짜리 라이터

듀퐁 라이터의 상징이 된 ‘퐁’ 소리가 나는 라이터는 1941년 석유 라이터를 최초로 발명하며 등장했다. 럭셔리 라이터 브랜드계에 입성해 성장해온 듀퐁은 최근 초고가 제품 출시를 이어가며 그 위상을 더 높이고 있다.

올해 150주년을 기념해 출시된 초고가 한정품 ‘카지노 포켓 컴플리케이션’ 라이터가 대표적이다. 2016년 라이터 출시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출시한 ‘컴플리케이션’에 카지노 게임 장면을 접목한 디자인이다. 듀퐁의 장인들은 럭셔리 워치 메이킹과 하이 주얼리 기술력을 바탕으로 라이터 전면에 룰렛 테이블을 형상화했다. 라이터 측면의 버튼을 누르면 룰렛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각각의 요소가 정교하게 구성돼 마치 예술 작품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고급 케이스에 담긴 듀퐁의 이 제품엔 라이터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습도계도 부착돼 있다. 전 세계 88개 한정으로 출시하며 국내에는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잠실점에 단 한 점이 입고됐다. 듀퐁 라이터 중 최고가인 9600만원이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