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이 애리조나 공장 신설에 역대 최대 규모인 7조2000억원을 투자키로 한 것은 급격히 커지는 미국 시장에서 ‘초격차’를 달성하겠다는 전략에서다. 지난해 미국에서 팔린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은 5.8%로 전년(3.2%) 대비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작년 8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올해는 약 10%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대(對)중국 규제와 자금력 등을 고려하면 배터리 생산능력을 대규모로 추가할 수 있는 기업은 사실상 LG에너지솔루션이 유일하다. 이 때문에 테슬라를 비롯한 미국 전기차 업체들은 지난해부터 LG에너지솔루션에 공장을 추가 건설해달라는 ‘러브콜’을 강하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파나소닉과 테슬라 수요 양분

LG엔솔, 美 테슬라 배터리 절반 쓸어온다
애리조나에 들어서는 새 공장에서는 2025년부터 연 27GWh 규모의 ‘2170’ 원통형 배터리가 생산된다. 테슬라를 비롯해 루시드, 리비안 등 전기차 스타트업에 납품될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테슬라를 제외한 기업들의 생산량이 많지 않아 이 공장은 사실상 ‘테슬라 전용 공장’이 될 전망이다. 테슬라의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80%에 달하는 만큼 LG에너지솔루션은 애리조나 공장을 통해 미국 점유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테슬라는 중국에선 LG에너지솔루션과 CATL을 납품처로 두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파나소닉에서만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받는다. 그러나 애리조나 공장이 완공되면 LG에너지솔루션이 파나소닉 독점 체제를 깨고 미국에서 테슬라 배터리 공급을 양분하게 된다. 게다가 테슬라는 사이버트럭, 세미트럭 양산도 준비 중이어서 LG에너지솔루션의 공급량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사이버트럭의 배터리 용량은 모델Y보다 두 배 이상 많고, 세미트럭은 최대 열 배에 달한다.

지난해 3월 LG에너지솔루션은 1조7000억원을 투자해 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3개월 만에 글로벌 경기 악화에 따른 투자비 급증으로 투자 시점과 규모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IRA 시행과 예상을 웃돈 미국 전기차 시장 성장 속도가 상황을 다시 바꿨다. 테슬라를 비롯한 전기차 기업들의 투자 요청이 강하게 쏟아지자 LG에너지솔루션은 1년 만에 신규 공장 투자 규모를 두 배 이상 늘리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 재검토 기간에 테슬라 등 미국 전기차 업체들이 대규모 물량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일단 LG에너지솔루션은 애리조나 공장에서 기존 주력 제품인 2170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추후 4680 배터리 생산라인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2170 배터리보다 에너지 용량이 다섯 배 많은 4680 원통형 배터리를 올 하반기 양산할 계획이다. 테슬라도 4680 배터리를 생산 중이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아 LG에너지솔루션이 향후 납품할 가능성이 크다.

○차량용 LFP, 2025년 양산

LG에너지솔루션은 같은 부지에 3조원을 별도로 투자해 연 16GWh 규모의 에너지저장장치(ESS)용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공장도 짓는다. 글로벌 배터리 업체 중 처음으로 건설하는 ESS 전용 생산 거점이다. 연내 착공해 2026년 LFP 배터리를 양산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신재생에너지 사용이 늘며 급격히 커지고 있는 글로벌 ESS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ESS용 배터리를 바탕으로 차량용 LFP 배터리도 2025년 양산하겠다는 목표다.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개발 중인 저가형 전기차인 ‘모델2’에 필요한 LFP 배터리를 공급받기 위해 LG에너지솔루션에 개발을 요청한 것으로 보고 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이번 공장 건설은 빠르게 성장하는 북미 전기차 및 ESS 시장을 확실하게 선점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규/박한신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