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브리핑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2 녹색건축한마당'에서 참관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2 녹색건축한마당'에서 참관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9년 기준으로 건물 부문은 전 세계 최종 에너지 소비의 30%(주거용 건물 22%, 비주거용 건물 8%)를 차지한다. 전력 소비의 경우 건물 부문 비중이 55%에 달한다. 또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건물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의 28%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건물 부문의 직접배출량은 온실가스 총배출량의 7.2%를 차지하며, 전력 소비로 인한 간접배출량까지 포함하면 24.7%를 차지한다. 상당한 수치다.

우리나라 총주거용 건축물 중 2010년 이전에 지은 건축물이 75%(2018년 기준)를 차지해 노후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것이 건물 부문 탄소중립에서 핵심 과제다. 기존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린 리모델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특히 민간 부문에서 그린 리모델링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건물 에너지 성능에 대한 관리와 로드맵, 규제도 부족하다. 국가 로드맵이 없는 상황에서 건물주가 자발적으로 그린 리모델링을 추진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에너지 효율 높이는 그린 리모델링


그린 리모델링 인센티브 필요

다량의 온실가스 배출은 특히 에너지 효율이 낮은 노후 건물에서 발생한다. 신축 건물의 난방에너지 사용량은 30년 전 건축물 대비 31~43% 수준이다. 30년 이상 된 건물을 리모델링해 에너지 효율이 개선된 건물로 탈바꿈시켜야 하는 이유다. 건물 부문 온실가스 감축을 연구해온 임현지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연구원은 “국내 그린 리모델링 비중이 연간 2%는 돼야 하는데 현재 0.4%에 그치는 수준”이라며 “그린 리모델링을 한다고 부동산 가치 상승이나 거래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린 리모델링의 유인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박진철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도 “건물주들이 투자 금액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부족하다. 공동주택의 경우 입주자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는 걸림돌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린 리모델링 사업은 노후 건축물을 에너지 성능 향상과 효율 개선을 통해 녹색 건축물로 전환하는 사업이다. 2020년부터 국토교통부가 어린이집이나 보건소, 병원 등 공공 건축물과 공공 임대주택에 지자체를 통해 국비 50~70%를 지원해 그린 리모델링을 돕고 있다. 이를 통해 건축물의 단열재를 교체하거나 보강하고, 고효율 창호와 LED 전등, 고효율 냉난방기로 교체가 이뤄진다. 재생에너지 사용과 열회수 환기장치 시공도 가능하다. 현재 공공 부문의 그린 리모델링 사업 규모는 7000억원 수준이다.

현재 국가 단위의 그린 리모델링 사업은 공공 부문에 국한돼 있다. 민간 건축물의 그린 리모델링은 매년 약 100억원 규모에 그치는 수준이다. 민간 건축물에 대해서는 대출이자 지원 등만 일부 이루어지고 있다. 민간 건축물이 전 건축물의 95% 이상을 차지하기에 전체 건물의 효율화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민간 건축물의 그린 리모델링이 절실하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는 민간 건축물의 그린 리모델링을 위해 공사비의 25~40%를 보조금이나 직접 대출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 임 연구원은 “그린 리모델링 공사비가 제곱미터당 45만~90만원인 것과 적정 투자 회수 기간을 고려할 때 10%의 보조금 지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융자 지원 등 온실가스 감축 정도에 따른 상환 면제 제도 도입도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도 “건축물 효율 개선을 완료한 가구에 재산세 감면 같은 추가적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과감한 인센티브 부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축 빌딩의 그린화도 중요

그린 리모델링만큼 신축 건물을 그린 빌딩(제로 에너지 건축물, ZEB)으로 짓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제로 에너지 건축물 인증 제도와 500m2 이상 건축물에 대한 의무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는 에너지 효율 등급 1++ 이상, 에너지 자립률 20% 이상이며 건물에너지 관리 시스템(BEMS)이나 원격 검침 전자식 계량기가 있어야 ZEB로 인정받는다. 글로벌 수준에 비해 ZEB 기준이 낮고, 의무화 대상도 적은 상황이다. EU 국가들은 에너지 자립률을 최소 32% 이상, 높은 곳은 87%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ZEB 인증 비용 대비 인센티브가 현실적이지 못한 점도 지적된다. 제로 에너지 건축물 인증을 받기 위해 5~15%의 추가 공사비가 소요된다. 미국은 최소 효율 기준을 충족하는 주택에 최대 2000달러(약 290만원), 제로 에너지 주택에 5000달러(약 720만원)의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임 연구원은 “취득세 15~20% 감면, 재산세 3~15% 감면 혜택의 일몰 기한(2024년)을 연장해 ZEB 투자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ZEB 인증도 유럽 등 다른 나라에 비해 획일적인 편이다. 현행 제로 에너지 건축물 의무화 계획은 500m2 이상 민간 건축물에 대해 ZEB 5등급 충족만을 규정하며, 이후 장기 계획이 없다. ZEB 기준을 ZEB Ready, nZEB(nearly-Zero Energy Building), ZEB로 세분화해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국내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와 녹색전략연구소, 사단법인 넥스트가 함께 만든 탄소중립 시나리오 ‘K-맵’ 건물 부문 이행안은 2030년까지 500m2 이상 모든 신축 건물에 nZEB 인증을 의무화해 에너지 자립률 50%를 충족하도록 하고, 소규모 건축물도 ZEB Ready 인증을 의무화하며 공공은 2035년까지, 민간은 2040년까지 에너지 자립률 100%를 충족하는 ZEB 인증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화석연료 보일러, 히트펌프로 대체해야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난방 부문의 에너지전환이다. 2018년 기준 주거용 건물의 난방에너지 사용량 중 도시가스가 64.8%, 석유가 17.7%, 석탄이 1.5%로 화석연료가 84%를 차지하고 있다. 난방 부문의 탈탄소 계획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영국의 경우 2035년부터 모든 신축 주택에 가스 네트워크 연결 금지 및 저탄소 난방 설치를 의무화하며, 미국 뉴욕시도 2023년부터 7층 이하 신축 건물에 대해 가스관 연결을 금지한다.

화석연료 난방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히트펌프와 지역난방 확대 정책이 미미한 부분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히트펌프는 자연으로부터 얻는 온도차를 이용해 건축물 내 열에너지를 공급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임 연구원은 “영국은 ‘히트펌프 레디’ 프로그램으로 연간 60만 대의 신규 히트펌프 설치를 목표로 하며, 독일은 2024년부터 매년 50만 대의 신규 히트펌프 설치를 계획하는 등 세계 여러 나라가 히트펌프 확대를 난방에너지 탈탄소 전략으로 삼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기존 화석연료 보일러를 히트펌프로 전환하기 위한 연도별 보급 목표를 수립하고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준영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수석연구원도 “탄소중립 사회를 위한 냉난방 해법으로 히트펌프 기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히트펌프 기술은 앞으로 신재생에너지와 경합하는 융복합 기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