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가업을 승계한 경영자가 사업을 계속하는 한 상속·증여세 납부를 유예하는 제도가 도입된다. 상속·증여세 부담 때문에 가업 승계를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는 지적에 정부는 기존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보완하는 동시에 납부유예 제도를 만들기로 했다. 기업이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관련 시설투자를 할 경우 세액공제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의 세율도 낮춘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일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이 같은 세제 개편 방안을 공개했다. 세제 개편안은 21일 발표된다.

추 부총리는 법인세제 개편에 대해 “기업에 대한 혜택을 늘리면서 복잡한 규정을 단순화하는 게 목표”라며 “법인세율을 낮추면 대주주만 이익을 보는 게 아니라 소액주주, 협력업체 관계자 등 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종부세와 관련해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징벌적으로 세율을 인상한 부분을 정상화할 것”이라며 “부동산은 못 잡고 중산층만 잡으면서 사회 갈등을 유발한 비정상적인 세제를 고치겠다”고 했다. 추 부총리와 참석자들은 세제를 포함해 물가정책, 규제 개혁, 재정건전성, 인구 감소, 공공 개혁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추경호 "부동산은 못잡고 중산층만 잡는 종부세 고치겠다"
▷이종화 한국경제학회장=‘추경호 경제팀’이 출범한 이후 다양한 정책이 쏟아지고 있는데, 사람들 손에 잡히는 정책이 없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다. 앞으로 어떤 분야에 집중하고,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 알려달라. 또 새 정부는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기초연금 인상이나 부채 탕감 등 선심성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도 있다.

▷추 부총리=전체적으로 경제 활력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세제 개편과 규제 혁파, 주 52시간제(연장근로 시간 관리를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변경) 보완,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 일부 정책을 선심성 공약이라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어느 정부의 어떤 정책이라도 선심성이 아예 없을 수 있겠나. 그 정도가 국가 경제를 좀먹지 않게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새 정부는 지속가능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이 시급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다만 국민에게 실상을 소상히 알리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공론화를 거쳐 개혁의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기대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추 부총리=동감한다. 한국 경제는 지난 40년 동안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험이 없고, 그 때문에 대응책을 만드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다른 국가의 정책을 참고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쌓은 역량을 동원해 잘 대응하겠다. 기대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노력도 이어가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인상한 것도 기대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한 게 아닐까 해석한다.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인구 문제에 대한 우려가 많다. 생산가능인구가 2017년부터 줄어들고 있고,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소멸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심각성에 비해 정부 인식은 안이해 보인다. 인구 문제 골든타임이 5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추 부총리=5년이 아니라 더 빨리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정부 내에서 활발한 논의가 있을 것이고,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지켜봐 달라.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잠재성장률이 계속 떨어져 걱정이다. 고용률을 높이는 게 해법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추 부총리=공감한다. 많은 인력이 고용시장에 나오는 게 중요하다. 고용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기업 규제 혁파를 핵심 과제로 내걸었다.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과거 정부에서도 같은 얘기를 해와서 기시감이 든다. 이번에는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을 방법이 있나.

▷추 부총리=아무리 이 자리에서 설명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다. 성과로 보여주겠다. 현장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듣고 기업을 옥죄는 걸림돌을 제거하겠다. 필요하다면 대통령과 국무총리도 나서겠다고 했다.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향후 ‘그래도 성과가 있네’라는 반응이 나오도록 하겠다.

▷문정숙 디지털소비자원장=글로벌 각국이 디지털 전환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추 부총리=저도 디지털 전환에 뒤처진 것 같아서 먼저 반성하겠다. 정부는 디지털 전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고민도 하고 있다. 관련 정책은 앞으로 나올 예정이다.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윤석열 정부가 ‘탈중국’을 추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중요한 국가인데, 정부는 이 사안을 어떻게 보나.

▷추 부총리=탈중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지난 정부처럼 미국과의 관계가 불확실하거나 양국이 서로를 불신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 중국과는 상호 존중하되 우리는 실리를 챙겨야 한다. 이전처럼 우리가 중국에 어설프게, 헤프게, 우습게 보여선 안 된다.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한국 증시의 MSCI선진지수 후보 편입이 불발됐다. 앞으로도 노력을 계속할 계획인가. MSCI는 영문 공시 의무화 등을 요구하는데 개선 의지가 있나.

▷추 부총리=MSCI선진지수 편입 자체를 목표로 삼지는 않는다. 시장 선진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하고 있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선진지수에 편입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가업승계 기업이 세금을 주식으로 납부(물납)할 때 받아줄 수 있는 조직을 국세청에 만드는 건 어떤가. 물가 관련 ‘워룸’도 있으면 좋겠다.

▷추 부총리=주식 물납과 관련해선 국세청을 통해 파악해보겠다. 워룸은 현재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 민생회의가 그런 성격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계속 비상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일하고 있다. 워룸을 만들었다는 각오로 물가 대응을 하겠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영세 자영업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문제는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 소상공인’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결단하기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체질 개선과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추 부총리=큰 틀에서 공감한다. 이미 일부 자영업자는 세상 변화에 적응하며 새로운 시장을 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자영업자들이 위기에 처했지만, 그중에는 배달 등을 통해 더 성장하는 분들도 있다. 경쟁력이 있는 분들은 더 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시장에 의해 자연스럽게 구조조정된 분들은 정부가 안전망이 되도록 하겠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생각이다.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를 꾸릴 계획이 없나.

▷추 부총리=자본시장 활성화는 중요한 과제다. 지금 관련 내용을 금융위원회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금융위 차원의 움직임이 지지부진하다면 더욱 적극적으로 하자는 의견을 전달하겠다.

▷이인실 지속경제사회개발원 이사장=윤석열 대통령이 앞서 공공개혁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그래서 기대했는데 아직도 제대로 된 대책이 안 나온 것 같다. 규제혁신, 노동개혁도 마찬가지다.

▷추 부총리=공공개혁, 노동개혁 등의 의지가 확실하다. 이미 일부 개혁 방안은 공개됐고 앞으로도 계속 발표할 것이다. 개혁에는 늘 기득권의 반대가 따른다. 무조건 목소리를 키운다고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을 늘려가고, 여론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모든 개혁을 한꺼번에 이루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윤석열 정부는 최소한 진전을 이루고,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는 확실히 있다.

도병욱/정의진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