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리 인상 여파로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다.

A급의 신용등급을 갖춘 우량 회사들도 공모채 시장을 피해 사모채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보통 대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평판이 깎일 위험이 있는 사모채보다 공모채를 선호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모채 시장에서 망신 당하는 것보다 사모채가 낫다는 분위기다. 공모채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거나 발행 일정을 미루는 사례가 속출하면서다.
대기업들, 사모채 발행 ‘봇물’
금리인상에 돈줄 막힌 기업들, 신용 A급도 사모채로 몰려가
한화에너지(신용등급 A+급)는 지난 27일 1000억원 규모의 2년 만기 사모채를 발행했다. 산업은행의 회사채 차환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산업은행이 한화에너지 사모채 80%를 인수하고 나머지 20%는 기관투자가를 통해 조달했다. 이 프로그램은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기업 유동성 확보를 지원하기 위해 도입됐다. 시장 분위기가 좋았던 지난해에는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기업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급증하는 분위기다.

효성그룹 계열사인 효성화학(A급)도 이달 500억원 규모의 3년 만기 사모채를 찍었다. 효성화학은 올 하반기 8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한다. 효성화학 관계자는 “추가 금리 인상을 고려해 선제적으로 자금 확보에 나섰다”며 “내부적으로 공모채보다 사모채를 통한 자금 조달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신용등급 A+급의 LX하우시스도 지난달 2년 만기 600억원, 5년 만기 600억원으로 구성된 사모채 120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신용보증기금이 지원하는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의 문을 두드리는 대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롯데건설(A+급), 롯데글로벌로지스(A급), SK렌터카(A급) 등은 최근 P-CBO를 통해 사모채를 발행했다. 신용보증기금 보증으로 신용을 보강한 뒤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는 P-CBO는 자체적으로 회사채를 발행하기 어려운 중견·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제도다. 하지만 최근에는 SK, 롯데 등 대기업들도 P-CBO를 찾고 있다.
공모채는 AA급 이상 집중 현상 심화
우량 기업들은 평소 사모채 발행을 꺼린다. 공모채 발행에 자신이 없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주관사가 투자자를 일일이 찾아야 하는 등 발행 절차도 복잡하다. 사모채를 발행하는 대기업이 늘어났다는 건 그만큼 공모채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뜻이다. 사모채는 수요예측 의무가 없어 투자 수요 확보 실패로 평판이 깎일 우려가 적기 때문이다.

공모채 시장에서는 AA급 이상 우량채 집중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이달 공모채 수요예측을 시행한 KT(AAA급)와 LG유플러스(AA급)는 모집금액의 서너 배에 가까운 자금이 몰리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반면 하나금융그룹 자회사인 하나에프앤아이(A급)는 최근 예정됐던 회사채 수요예측 일정을 연기했다. 이지스자산운용(A-급)은 지난 23일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에서 일부 미달을 냈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예상을 뛰어넘는 물가지표와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점이 회사채 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