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들이 27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모여 '국민연금기금운용 중기자산배분(2023~2027)'을 심의·의결했다. 보건복지부 제공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들이 27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모여 '국민연금기금운용 중기자산배분(2023~2027)'을 심의·의결했다. 보건복지부 제공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2027년까지 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을 14%로 줄이기로 했다. 올해 말 기준 16.3%로 정한 국내 주식 비중을 5년 만에 2.3%포인트 줄이기로 한 것이다. 해외 주식 비중은 현재 28% 수준에서 2027년까지 40.3%로 높이기로 했다. 928조원 기금의 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동시에 향후 수급자에게 돈을 내주기 위해 보유 자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국내 증시에 미칠 충격을 미리 줄이려는 목적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는 27일 이런 내용의 ‘국민연금기금운용 중기자산배분안(2023~2027년)’을 심의·의결했다. 중기자산배분안은 기금운용위가 매년 내놓는 5년 단위 운용 전략이다. 이날 결정에 따라 국민연금은 기금 자산 중 국내 주식 비중을 2027년까지 14.0%로 줄일 계획이다. 지난해 자산배분안에선 2026년까지 14.5%로 줄이기로 했는데 1년 만에 비중을 0.5%포인트 더 낮췄다. 올해 말 16.3%로 정한 국내 주식 비중이 2027년까지 14%로 줄어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액은 164조9000억원에서 192조원으로 27조1000억원 늘어난다. 국민연금 기금이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해외 주식 비중은 지난해 자산배분안에선 2026년까지 38.5%로 늘어날 예정이었지만 올해 자산배분안에선 2027년까지 40.3%로 확대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국민연금의 올해 해외 주식 비중은 평균 27.8%다.

국내 채권 비중은 2026년 24.7%에서 2027년 22.9%로 하향 조정됐다. 해외 채권 비중은 2026년과 2027년 모두 8.0%로 유지됐다. 부동산 등 대체투자 비중은 14.3%에서 14.8%로 0.5%포인트 높아졌다.

해외투자 더 늘린다는 국민연금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계속 줄이는 대신 해외 주식 비중을 빠르게 확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해외 자산에 대한 투자 수익률이 국내 자산에 대한 투자 수익률보다 높다. 빠르게 진행되 고령화도 주요한 원인이다. 나중에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연금을 지급하려면 보유 자산을 팔아야 하는데 이때 국내 주식을 한꺼번에 팔면 국내 증시가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국내 주식 비중을 줄여놓는 것이다.

국내보다 높은 해외 수익률

'동학개미' 어쩌나...900조 국민연금 한국주식 더 줄인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27일 심의·의결한 ‘국민연금기금운용 중기자산배분안(2023~2027년)’에 따르면 2019년부터 작년까지 3년간 국내 자산에 대한 투자 수익률은 연평균 6.45%에 그쳤다. 반면 해외 자산의 투자 수익률은 18.04%에 달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는 “과거 평균 기금운용 수익률을 비교할 경우 해외 자산의 수익률이 국내 자산 대비 2~3배 우위에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해외 주식·채권 투자를 대폭 늘리면서 원·달러 환율 불안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해외 주식과 채권에 투자할 때 환헤지를 하지 않고 현물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서 투자하는데 그 결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령화 감안, 국내 주식 축소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을 외면하는 두 번째 이유는 고령화다. 아직까지는 국민연금 납입자가 많아 기금 규모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고령화로 인해 수급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기금이 축소되기 시작하면 국민연금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나 채권 등 자산을 매각해 연금 수급자에게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상장사 시가총액의 6.3%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향후 기금 유동화에 따른 국내 금융시장 충격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국내 주식·채권 비중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자료:국회예산정책처
자료:국회예산정책처
지난 3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전체 자산(적립금) 규모는 928조원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20년 8월 추산한 전망에 따르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2038년(1072조원)까지 꾸준히 늘어나다가 2039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한다.

채권시장 충격 ‘우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올해 평균 16.3%에서 2027년까지 14.0%로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기로 했지만 국민연금이 당장 국내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 비중 자체는 감소하더라도 기금 규모 자체가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국내 주식 투자 규모는 올해 164조9000억원에서 2027년 192조원으로 27조1000억원(16.4%) 증가할 예정이다. 다만 2027년에도 국내 주식 비중이 올해처럼 16.3%로 유지됐다면 국내 주식 투자액은 223조6000억원으로 올해 대비 58조7000억원 늘어날 수 있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줄여나가는 속도가 완만한 만큼 개인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만큼의 큰 충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의 이번 자산배분 결정이 국내 채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 기금의 국내 채권에 대한 투자 비중은 34.5%에서 2027년 22.9%로 줄어들 예정이다. 국내 채권 투자액은 올해 348조1000억원에서 당장 내년에 347조1000억원으로 줄어들고, 2027년엔 314조1000억원으로 축소될 예정이다.

정의진/차준호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