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셀러레이터(AC)나 벤처캐피털(VC)이 ‘컴퍼니 빌딩’ 사업에 뛰어드는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다. 컴퍼니 빌딩은 유망 아이템을 포착하면 단순 자금 지원이나 경영 지원 수준을 넘어 직접 사업에 뛰어드는 것을 말한다. 스타트업 경영에 참여해 성장을 돕거나 또는 회사를 직접 설립하기도 한다.

‘컴퍼니 빌더’는 연쇄 창업가 빌 그로스가 1996년 아이디어랩을 설립한 것이 시초다. 현재는 세계적으로 340여 개의 컴퍼니 빌더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에선 2012년 설립된 패스트트랙아시아가 1호 컴퍼니 빌더로 꼽힌다.

○컴퍼니 빌더로 변신한 AC

"될성부른 스타트업 직접 키운다"…'컴퍼니 빌딩'사업 나서는 AC·VC
액셀러레이터인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1호 컴퍼니빌딩 프로젝트인 어린이 공간 서비스 사업을 위해 지난달 자회사 ‘디프런트도어즈’를 설립했다. 이달 말까지 최고경영자(CEO) 선정을 마무리하고 다음달부터 서비스 기획에 들어간다.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는 “컴퍼니 빌딩에도 다양한 유형의 모델이 있는데 독일의 로켓인터넷과 같이 이미 검증된 사업 기회를 빠르게 포착해 도입하는 방식이 있다면, 우리는 문제 해결에 집중해 기존에 없는 사업을 만드는 방식”이라며 “저출산 문제라는 아젠다에 공감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사업화를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추가 컴퍼니 빌딩을 위해 지난 1일 ‘포트폴리오그로스팀’도 출범시켰다.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팀 빌딩부터 서비스 기획, 시장 분석을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조직이다. 재무·회계·법률 자문과 인력관리도 지원한다.

○투자하고 직접 키운다

국내 1호 컴퍼니빌더 패스트트랙아시아는 이미 10개의 자회사 스타트업을 탄생시켰다. 스타트업에 투자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을 설립하고 이들 간 협업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해주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만들어낸 자회사 가치는 5000억원이 넘는다. 박지웅 패스트트랙아시아 대표는 VC인 패스트벤처스를 비롯해 성인교육회사 데이원컴퍼니, 공유오피스 패스트파이브, 투자전문 자회사 패스트인베스트먼트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패스트벤처스는 다음달 성장지원형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창업팀 조직을 위해 경력직 채용 플랫폼 ‘디오’와 제휴했다. 또 앤틀러코리아는 창업자 100명을 대상으로 ‘스타트업 제너레이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컴퍼니 빌딩과 액셀러레이팅, VC 투자가 결합된 모델로 아이디어 검증부터 팀원 구성, 시제품 개발까지 한꺼번에 진행된다.

○‘침략자’로 비칠 수도

해외 VC들도 내부에 창업가 지원 전담팀을 구성하는 추세다. 스타트업에 대한 컨설팅 수준을 넘어 경영에 상당 부분 관여하거나 실제 사업에 주도권을 행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VC인 앤드리슨 호로위츠는 최근 1년간 창업자 대상 컨설팅, 인력관리 등을 전담하는 인력이 56% 늘었다. 투자팀 외에 재무·마케팅·전략 등 투자기업 지원 인력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비즈니스 개발 담당자를 창업자와 연결해 상품·서비스 출시까지의 시간을 단축하고 직원 채용, 서비스 마케팅을 돕는 모델이다.

한 컴퍼니 빌더 관계자는 “스타트업을 육성해 본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의 지원을 받아 창업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며 “창업자 입장에선 시행착오나 인력 비용 부담을 줄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창업자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국내 스타트업 문화에선 컴퍼니 빌딩 모델이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뚜렷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는 창업자는 지원에 나서려는 컴퍼니 빌더들을 오히려 ‘침략자’라고 여길 수 있다”고 했다.

고은이/허란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