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예상보다 훨씬 강한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 발언들을 쏟아냈다. 26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다. 기존에 즐겨 쓰던 추상적인 표현은 오간 데 없이 “자산가격이 부풀어 있다”거나 “궁극적 관심은 (금융시장이 아니라) 실물경제”라고 대놓고 얘기했다. 그동안 부정해온 속전속결식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열어놨다.

전문가들은 급박한 미국 경제 상황 때문에 파월 의장이 강경하게 돌아선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곤두박질치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올해 최대 7회 금리 인상도 배제 안 해

주가 떨어져도 인플레 잡겠다는 파월…올해 금리 7번 올릴 수도
이날 FOMC 정례회의 이후 나온 성명서는 시장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만장일치로 연 0~0.25%인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예정대로 오는 3월 종료하기로 결정했다는 게 핵심이었다. 동시에 3월에 기준금리를 올릴 뜻을 내비쳤다. Fed의 대차대조표 축소(양적긴축)는 금리 인상 이후 시작할 것이란 점도 예측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파월 의장의 발언 수위는 달랐다. 상당 부분이 처음 나오는 내용이었고 시장 전망을 앞서갔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견해가 특히 그랬다. 파월 의장은 “가격 상승은 더 넓은 범위의 상품과 서비스로 번졌고 임금도 빠르게 올랐다”며 “높은 인플레이션이 오래 유지될 위험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게 파월 의장의 판단이다. 그는 “노동시장은 매우 강하기 때문에 노동시장을 위협하지 않고 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산 가격은 다소 상승한 상태다.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은 실물시장과 물가 안정, 완전고용”이라며 금리 인상 필요성을 설명했다.

파월 의장은 금리를 빠르게 올릴 뜻도 시사했다. ‘향후 FOMC 회의 때마다 금리를 올릴 수 있느냐’란 질문에 “정책 결정에는 겸손함이 필요하고 경제는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바뀐다”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또 ‘금리를 0.5%포인트씩 인상할 수 있느냐’란 물음엔 “우리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지금 말해줄 수 있는 건 과거 금리 인상 시기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라며 부인하지 않았다. JP모간은 “파월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은 Fed 의장이 된 뒤 가장 매파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중간선거 앞두고 물가 급등

파월 의장이 강한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은 인플레이션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미국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7.0% 뛰었다. 1982년 6월 후 최대 상승폭이었다. 주요 7개국(G7)을 포함한 선진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물가가 올랐다. 이에 비해 고용 환경은 급속도로 개선되고 있다. 작년 12월 미국 실업률은 3.9%로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20년 3월 후 가장 낮았다. 파월 의장이 “노동시장을 해치지 않고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상당한 여지(room)가 있다”고 강조한 배경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도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변신한 요인이 됐다는 관측이다. AP통신이 지난 13~18일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43%를 기록하며 취임 이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경제정책에 대한 지지율은 37%에 불과했다. 사상 최악 수준에 근접한 인플레이션의 영향인 것으로 AP는 풀이했다.

FOMC 구성 변화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FOMC부터 표결권을 가진 Fed 인사들이 매파 성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올해 FOMC부터 표결권을 새로 얻은 네 명은 에스더 조지 캔자스시티연방은행 총재와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은 총재,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연은 총재,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연은 총재다. 이들 중 중도파로 불리는 하커 총재를 뺀 세 명이 매파 성향을 보여왔다.

이에 비해 지난해 표결권을 행사한 지역 연은 총재 네 명 중 세 명은 비둘기(통화 완화 선호)파나 중도파로 분류된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개인 성향에 관계없이 FOMC 위원 전원이 강경파로 돌아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워싱턴=정인설/뉴욕=김현석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