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타이어 공장
넥센타이어 공장
설 명절을 앞두고 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이 모이면 빠지지 않는 화두가 있습니다. 바로 타이어 전문 기업 넥센타이어의 신용등급 관련 얘기죠.

국내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넥센타이어의 장기 신용등급 전망을 종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꿨습니다. 넥센타이어의 현재 신용등급은 A+. 한 단계만 오르면 우량 기업의 상징인 AA급(AA-~AA+) 타이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넥센타이어는 비교적 신용도 부침이 없던 기업이랍니다. A 신용등급을 유지하다 사업 확장에 따른 고(高)성장 기조 덕분에 2013년 A+로 올라선 뒤 10년째 변함이 없답니다. 예기치 못한,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굳건하게 신용도를 유지했죠.

사실 지난해 말부터 기업들의 신용등급은 상향 기조로 돌아섰습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사업이나 재무적으로 어느 정도 대응능력을 갖춘 덕분이죠. 코로나19 확산 초반에 발생한 급격한 실적 악화가 마무리된 영향도 있었답니다. 호텔·면세, 의류, 외식 등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강등되긴 했지만 지난해 말 이후 이들 기업의 신용도도 안정을 찾고 있답니다.

이렇게 코로나19발 신용도 칼바람이 잦아들고 있는 시점에 이례적으로 넥센타이어의 신용 전망이 떨어진 겁니다. 기업 CFO들은 이번 신용 전망 강등의 배경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일단 한국신용평가가 지적한 부분은 과거에 비해 약화된 이익창출능력입니다. 지난해 코로나19 영향이 일부 완화하면서 이동 수요가 증가세로 돌아섰습니다. 교체용 타이어 매출도 회복세를 띠었죠. 하지만 반도체 부족에 따른 완성차 생산 차질로 신차용 타이어 매출 회복이 늦어졌습니다. 이렇다 보니 전체 매출은 코로나19 확산 이전 수준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또 넥센타이어는 수출 의존도(전체 물량의 60% 이상)가 높은 편인데 선복 공급 부족에 따른 해상운임비 상승으로 수익성은 떨어졌습니다. 판매단가 인상 폭은 비용 상승에 미치지 못하는 등 가격전가력도 원활하게 발휘되지 못했고요.

한국신용평가는 "이런 비우호적인 영업 환경이 당분간 이어져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무엇보다 CFO들의 셈법이 복잡해진 건 그 다음 이유였습니다. 한국신용평가는 넥센타이어의 증설투자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넥센타이어는 2017~2018년 체코 공장 신축과 마곡 연구개발 센터 건설 등으로 순차입금이 증가했습니다. 2018년 말 순차입금은 9599억원으로 1조원에 육박했답니다. 체코 공장 양산 개시 이후 투자 부담은 줄었지만 지난해부터 미국 반덤핑 관세 관련 예치금 자금 소요가 추가되면서 재무부담을 축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말 연결 기준 순차입금 역시 9705억원을 나타냈죠.

올해부터는 체코 공장 2단계 증설투자를 진행해야 합니다. 내년까지 총 5000억원이 예정돼 있습니다. 한국신용평가는 이런 투자부담 증가가 결국 넥센타이어의 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운반비와 원재료비 등 비용 부담을 줄이기도 쉽지 않은데 증설 투자에 따른 재무부담 확대가 예상된다는 이유였죠.

CFO들은 한국신용평가가 넥센타이어의 증설 투자를 바라보는 시각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사실 해상운임비 급등과 원재료비 상승 등은 비단 넥센타이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산업 구조의 특성상 대다수 기업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죠. 대외 환경이 여전히 불확실하긴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올해 투자 재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2년 간 지연시켰던 해외 영업도 다시 추진하려는 기업이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증설 투자나 설비 투자 규모가 확대하게 되죠. 이런 올해 재무 전략이 혹시 신용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CFO 입장에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특히 지난해 말과 연초 새로 부임한 CFO들의 경우 당장 올해 신용도 관리와 투자 확대에 따른 재무 전략 구축이란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떠안게 됐답니다. 넥센타이어의 신용 전망 하락이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 이유랍니다.

한 중견 기업 관계자는 "연초라 아직까지는 회사채 발행 시장에서 자금 조달을 추진하는 데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갈수록 조달 환경이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가뜩이나 금리 인상기로 접어들어 기관투자가들이 원하는 발행 금리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데 신용도 관련한 부정적인 신호라도 나오게 되면 재무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될 수 있다"고 전했답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