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 책임을 폭 넓게 적용하는 주주대표소송[Lawyer's View]
국민연금공단은 지난해 9월 '2020년 연차보고서'에서 수탁자책임활동과 관련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와 함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주주권 행사 강화와 관련해 △이사회 구성·운영 등 가이드라인 마련 △환경·사회 다변화를 통한 주주활동범위 확대 △대표소송 제기 실행 추진을 들고 있다.

이에 따라 주주대표소송(다중대표소송 포함)이 제기 가능한 사건의 유형과 손해발생금액,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를 고려한 제소기한 등을 검토해 보다 구체적인 대표소송 제기 기준 및 절차를 마련하고, 실제로 대표소송을 제기해 투자대상기업의 경영진이 기업가치를 훼손할 유인을 보다 실효적으로 억제하고 장기적으로 주주가치 증대에 기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주주가치 훼손 관련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인할 목적으로 기업들에 비공개서한을 발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건복지부는 법령상 소송 제기 요건, 승소 가능성, 소송 효과대비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주주대표소송 제기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주주대표소송이란 이사가 회사에 대해 부담하는 모든 채무에 관하여 회사가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을 말한다. 대표소송의 대상은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에 과거 재직했거나 현재 재직 중인 이사뿐만 아니라 감사, 업무집행지시자 등을 포함한다.

대표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주주가 회사에 대해 서면으로 이사 책임을 추궁할 소 제기를 청구하였으나 회사가 30일 내에 응하지 않았을 것'(다만 기간의 경과로 인하여 회사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 상법 제403조 제2항 내지 제4항)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원고가 되기 위해서는 소 제기 시점을 기준으로 발행주식 총수의 1%를 보유해야 하는데(상법 제403조 제1항). 상장회사의 경우 그 외에도 6개월 전부터 발행주식 총수의 0.01%를 계속 보유하는 경우에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상법 제542조의6 제6항).

한편 최근 대법원 및 서울고등법원은 담합행위와 관련해 이사가 위법행위를 지시하거나 관여하였다고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도, 임직원의 위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합리적인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거나 그 시스템을 구축하고도 이를 이용하여 회사 업무 전반에 대한 감시·감독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이사의 감시의무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하고 있어 주목된다.

대법원(2021. 11. 11. 선고 2017다222368 판결)은 철강회사의 주주가 회사의 부당한 공동행위로 인하여 부과된 공정위 과징금(320억여원) 상당의 손해에 관하여 당시 대표이사에게 이를 배상할 것을 청구한 주주대표소송에서 "대표이사가 담합행위에 관여했거나 위법행위임을 알면서 감시의무를 다하지 않고 방치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원고패소판결을 한 원심과는 달리, 대표이사가 담합행위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였고 임원들의 행위를 직접 지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하였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①오랜 기간 동안 여러 명의 영업 담당 임원과 영업팀장들을 통해 여러 품목에 관한 지속적·조직적 행위가 있었음에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다른 임직원들로부터 제지나 견제가 없었다는 점, ②철강산업은 자본집약적 장치산업으로 담합 유인이 높고 담합이 공정거래법상 시정조치, 과징금, 형벌까지도 부과되는 중대한 법위반행위임에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합리적인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③피고가 내부통제시스템으로 구축하였다고 주장하는 내부회계관리제도는 회계정보의 작성과 공시를 위한 것으로 대부분 회계분야에 한정되어 있고, 2003년 제정한 윤리규범은 임직원의 직무수행에 관한 추상적·포괄적 지침에 불과하여 위법행위 통제장치로 기능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의 이유를 제시했다. 대표이사로서 마땅히 기울였어야 할 감시의무를 지속적으로 게을리한 결과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여 그 책임을 부담하여야 한다고 판시한 것이다.

한편 서울고등법원(2021. 9. 3. 선고 2020나2034989 판결)에서도 경제개혁연대 등 건설회사 주주들이 건설회사의 4대강사업 입찰담합에 대해 부과된 공정위 과징금(총 280억여원) 상당의 손해에 관하여 당시 대표이사 및 다수의 평이사들(사외이사 포함)에게 이를 배상할 것을 청구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이사의 감시의무 인정범위를 폭넓게 보아 개별입찰업무에 관여하거나 보고받은 사실이 없어 입찰담합에 대해 알지 못하였고 알 수도 없었으며 이를 의심할 만한 사정 또한 전혀 없었다 하더라도 ①회사가 제정한 윤리강령, 기업행동강령과 회사가 시행한 공정거래법 교육, 윤리경영교육 등은 임직원의 직무수행에 관한 추상적이고 포괄적 지침 또는 사전교육에 불과한 점, ②담당 본부장의 책임 아래 입찰담합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이사들로부터 아무런 제지나 견제를 받지 않은 것과 다름없고 담합 관여자들에 대한 조사절차 또는 징계절차도 전혀 운용하지 않았으며, 입찰담합을 주도한 직원이 오히려 임원으로 승진하기도 하였던 점, ③해당 건설회사는 입찰담합과 관련해 수십여회 과징금 처분을 받은 데다 그 대부분은 피고들이 이사로 재직하던 기간 동안 일어난 일이었고, 대규모 공사의 경우 대형 건설회사 사이의 입찰담합의 가능성이 상시 존재함에도 임직원의 입찰담합 시도를 방지·차단하기 위한 어떠한 보고 또는 조치도 요구하지 않았고, 내부통제시스템의 구축 또는 운용에 관하여도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점, ④대법원은 이미 2008년에 대규모 주식회사의 이사에 대하여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제대로 작동하도록 배려할 의무가 있다고 선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준법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컴플라이언스팀은 다수의 입찰담합 적발 이후에야 신설된 것인 점, ⑤피고들이 이사회에 상정된 의안에만 관여하였을 뿐 내부통제시스템의 구축 및 운용 관련 어떠한 보고나 조치를 요구하였음을 인정할 증거는 전혀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대표이사와 이사 및 사외이사들의 감시의무위반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다만 대표이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위 대법원 판결보다 더 광범위하게 사외이사를 포함한 전체 이사에 대해 감시의무해태를 인정한 본 고등법원 판결은 현재 대법원에서 다투는 상황이다.

위 각 판결들은 주식회사 이사의 '합리적인 정보 및 보고시스템과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배려할 의무'를 인정하였던 기존 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6다68636' 판결의 법리를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①위법행위를 몰랐거나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대표이사나 평이사의 책임을 인정하였고, ②담합행위에 따른 공정위 과징금도 손해에 해당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으며, ③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상의 내부회계관리제도 등만으로는 내부통제시스템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구체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국민연금을 비롯하여 주주대표소송의 원고적격이 있는 사람 또는 단체는 위 각 판결들을 계기로 회사의 위법행위에 대해 이사의 감시 소홀에 따른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소송을 제기 당하는 이사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위법행위를 지시 관여하였다는 점 외에도 위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합리적인 보고시스템과 내부통제시스템을 갖추도록 하였다는 점, 그리고 이를 이용해 회사업무 전반에 대한 감시·감독이 제대로 작동했다는 점을 증명할 부담을 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담합행위 등 위법행위에 관여하거나 보고받은 사실이 없어 이에 대해 알지 못하였다는 주장만으로는 책임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유형의 주주대표소송에서는 담합행위 등 위법행위의 기간이 얼마나 장기인지 여부, 법령준수교육 외에 위법행위가 의심되는 경우의 신고절차 및 신고자에 대한 보호 내지 보상 등 위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절차의 구비 여부, 위법행위 관여자들에 대한 조사 및 징계절차의 구비 및 그 이행 여부, 이밖에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 등이 일반적인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된 위법행위의 행위자, 위법행위 자체의 특성에 비추어볼 때 이사가 위와 같은 노력을 했다면 위법행위를 적발하여 시정할 수 있었을지의 여부 등 개별적인 사안의 특성에 따른 쟁점들도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과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주주대표소송의 추이를 잘 파악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비를 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변호사, 전 서울고등법원 고법판사.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필자가 속한 법률사무소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