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과 굴욕 협상 해보면 안다, K패션 해외로 가야한다는 걸"
상상초월 명품의 '갑질'…"K패션, 굴욕 협상 벗어나려면…"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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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뷔통이 시내 면세점에서 철수한다는 게 ‘뉴스’가 되는 요즘이다. 외국 관광객이 줄었으니, 돈을 쫓는 기업 입장에선 당연한 일인데도 명품 ‘3대장’ 중 하나가 나간다고 호들갑이다. 롯데 등 면세사업자와 협상력을 높이려는 어깃장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유별난 명품 사랑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뉴스가 되지 말란 법도 없겠다.

루이뷔통을 비롯해 에르메스, 샤넬은 기본이고 속칭 잘 나간다는 해외 브랜드들의 ‘갑질’은 상상 초월이라고 한다. 가격을 제멋대로 올리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매장 인테리어와 규모, 옆에 들어올 브랜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 지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일일히 간섭 한다. 백화점 바이어를 비롯해 패션 대기업들의 ‘브랜드 헌터’ 등 명품 브랜드와 협상을 해 본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굴욕을 맛보지 않으려면 K패션의 세계화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K패션의 해외 진출이 명품과 굴욕 협상 벗어날 길
하고엘앤에프는 K패션의 해외 진출이란 국내 패션산업의 오랜된 숙원을 풀기 위해 호기롭게 뛰어든 스타트업이다. SK네트웍스 패션사업부에서 타미힐피거 등을 들여 온 홍정우 대표가 2017년 창업했다. 2020년엔 ‘은둔의 패션왕’이라 불리는 권오일 대명화학 회장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대명화학 패션그룹에 편입됐다. 든든한 전략적 투자자를 만나며 왕성한 브랜드 M&A를 진행 중이다. 19일 현재 ▲마뗑킴 ▲르셉템버 ▲브이에이치디자인(보카바카, 빈티지헐리우드, 하이칙스) ▲스페이스스테이션(로켓런치, 어몽, 큐리티, 콤스튜디오) ▲SOOP(히든포레스트마켓, 늘) ▲청앤킴(제이청, 테이즈) ▲리플레인 ▲분더캄머 ▲메종마레 ▲아보네 ▲로아주 ▲코일리 ▲마가린핑거스 등 10개 법인, 25개 브랜드에 투자하고 있다.

홍 대표가 추구하는 브랜드 육성 전략은 디자이너의 독립성 유지다. LVMH그룹이 도나 카란이라는 걸출한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존중, DKNY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켰듯이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올 때가 됐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타미힐피거만 해도 미국 내 우물 안 브랜드였으나 PVH그룹(캘빈클라인 등 보유)에 인수된 이후에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홍 대표는 “국내에서 디자이너가 브랜드(여성복)를 런칭해 성공적으로 운영한 사례가 최근 20년간 거의 없다”며 “몇몇 디자이너 브랜드를 대기업이 인수·합병한 사례가 있었지만 대부분 디자이너가 떠나는 수순을 밟았다”고 말했다.

‘권오일 사단’의 핵심으로 부상한 하고엘앤에프의 전략은 디자이너는 오로지 창작에만 몰두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오프라인 백화점이라는 유통 구조를 뚫을 수 있느냐가 패션 브랜드의 명운을 좌우한다”며 “해외는 백화점 뿐만 아니라 소규모 리테일샵의 비중도 매우 높다”고 말했다. 재고 관리와 매장 운영 등에 관한 노하우와 이를 뒷받침할 자본력이 없으면 성장 정체를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이 글로벌화의 첨병으로 삼았던 빈폴조차 해외 유통망 공략(홀세일 영업)에 실패하며 내수용으로 주저앉았다.

홍 대표는 “하고(HAGO)는 투자 브랜드에 단순히 자금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재무와 마케팅, 비즈니스 프로세스 수립 등 매니지먼트 전반을 지원하고 있다”며 “성장 및 유통 전략에 대한 지원을 바탕으로 글로벌 브랜드로 만드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국내에서는 온라인 사업의 강화는 물론 백화점을 중심으로 재고 없는 O4O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플랫폼은 브랜드의 시장 진입을 위한 교두보일 뿐"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인큐베이팅과 함께 하고엘앤에프는 패션플랫폼으로서도 꾸준히 성장 중이다. 하고엘앤에프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88% 성장을 기록했다. 하고(HAGO) 앱 다운로드 수는 379% 증가했고, 월 평균 방문자 수도 346% 늘어나는 등 올 한 해 동안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하고는 ‘Have A Good One’의 약자로,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패턴에 최적화된 소비문화 큐레이션 플랫폼이다. 자체 디자인 및 국내 생산 위주의 브랜드를 선별해 패션부터 라이프스타일 전반의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패션 부문은 오직 국내 중소 브랜드 및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에만 집중하며, 현재 약 2000 여 개의 디자이너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하고엘앤에프의 투자 브랜드들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실제로 ‘마뗑킴’은 지난해 F/W시즌에 월 매출 20억원을 기록했다. 연 누계 매출은 150억원을 무난히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투자 확정 이후 3배 이상 매출이 늘었다. ‘보카바카’는 월 매출액 10억원을 기록했으며 로켓런치, 어몽, 큐리티, 콤스튜디오를 산하에 둔 ‘스페이스스테이션’ 역시 신장률이 전년 대비 2배에 달했다. 하고엘앤에프가 투자한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는 지난해 평균 78% 성장(전년 대비)했다.

지난 8월에는 신진 디자이너 인큐베이팅 사업의 일환으로, 롯데백화점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롯데백화점 동탄점에 100평 규모의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관 ‘#16’을 오픈하기도 했다. 온라인 패션플랫폼이 대형 백화점에 정식 입점한 것은 하고엘앤에프가 처음이다.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온라인 환경에만 국한하지 않고 오프라인 시장에서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했다는 게 홍 대표의 설명이다.

하고엘앤에프가 패션 분야에서 국내 최초로 선보인 자체 개발 결제 애플리케이션 ‘오더하고’는 미국 아마존의 무인 슈퍼마켓 ‘아마존 고’와 같은 O4O 서비스다. #16 매장 내 표시되어 있는 QR코드 스캔을 통해 간편하게 결제 앱을 설치할 수 있다. 복잡한 가입 절차 없이 이름, 휴대폰 번호, 주소 입력 및 비밀번호 설정만으로 이용 가능하다. 마음에 든 제품을 피팅해 보고 구매를 원하는 경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바코드를 스캔하면 #16 매장 내 여러 브랜드의 상품을 장바구니에 바로 담아 판매관리시스템(POS)에서 한 번에 결제하는 형태다. 모든 제품은 각 브랜드에서 택배로 무료 발송하고, 배송 현황은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홍 대표는 “플랫폼의 외형을 확장하는데 주력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하고는 신진 브랜드들이 초기에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진입 무대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고(HAGO)는 올해 거래액 1200억원, 투자 브랜드 매출 1000억원이 목표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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