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유 투자은행인 중국국제금융공사(CICC)가 바이오 등 한국 신(新)성장산업에 투자하는 4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다. 한국을 교두보로 팬아시아 펀드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중국이 전략산업 분야 해외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유치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9일 정부와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CICC 계열사인 CICC캐피털이 최근 별도 법인 CICC어센트를 설립하고 3000억원, 1조원 규모의 펀드 조성 작업을 하고 있다. CICC어센트는 펀드 조성액을 4조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펀드 주요 투자자(LP)에 한국 주요 대기업이 대부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국을 찾은 CICC 고위 관계자는 “중국 진출을 원하는 한국 기업의 뜨거운 열기를 확인했다”며 “중국 투자자와 한국 기업을 잇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CICC어센트는 40여 개 한국 중견기업을 1차 투자 대상으로 정했다. 이 중 중국 진출 시 시너지가 큰 10여 개 기업이 최종 선택을 받을 전망이다. 투자 분야는 반도체, 바이오, 신소재 등 유망 신산업에 집중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투자는 글로벌 공급망 분야에서 한국 등 동북아시아 국가의 중요성이 크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또 미국과의 무역갈등이 심화하면서 주변국과의 경제적 동맹 확대에 중국 정부가 신경을 쓰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산업계에선 CICC어센트의 4조원 규모 투자를 최근 한국과 중국 기업 간 협력 강화 추세의 연장선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중국 1위 코발트 정련업체인 화유코발트는 지난달 LG화학과 경북 구미에 연 6만t을 생산하는 양극재 공장을 짓기로 합의했다. 쌍용자동차도 지난달 중국 전기차·배터리 제조업체 BYD의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를 내년에 생산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같은달 중국 지리자동차와 프랑스 르노도 한국에 합작법인(JV)을 세워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에서 차량을 생산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달 이후 나온 일련의 투자 결정은 중국 정부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한국 산업계와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중국의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반도체 관련 기업들도 중국의 ‘러브콜’을 잇달아 받고 있다. 기술력을 갖춘 국내 회사 중 미국에 수출하지 않는 업체가 중국 기업의 최우선 투자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이 다른 나라와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얽히는 것이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고립을 피할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며 “중국 시장을 내주면서도 테슬라 1호 해외 공장을 상하이에 허가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지훈/노경목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