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서 못 마시는' 와인
한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 A씨는 요즘 와인을 구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연말연시 주변 지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와인 선물을 준비하고 있지만 물량 확보가 쉽지 않아서다. 그는 “단골 리테일숍에 부탁하고, 회사와 집 근처 와인숍에 전화를 돌리고 있지만 원하는 와인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3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연말연시를 맞아 선물용 와인 수요가 급증하면서 일부 인기 와인을 중심으로 ‘품절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아영FBC가 수입해 판매하는 이탈리아 와인 티냐넬로가 대표적이다. 이 와인은 “진열대에 놓자마자 사라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이트진로가 수입해 국내에 선보이고 있는 실버오크와 나라셀라가 들여온 케이머스 와인도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홈파티용 와인 수요가 늘어난 것도 와인 품귀 현상에 영향을 미쳤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샴페인 완판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마릴린 먼로가 사랑한 샴페인으로 유명한 파이퍼하이직과 유명 항공사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제공하는 와인으로 이름을 알린 페리에주에그랑브뤼 등은 열흘 만에 초도 물량 1만여 병이 팔려나갔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가정용 와인 수요가 예상을 뛰어넘어 추가 물량을 항공편으로 공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올해 와인 수입 계획을 다시 짜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누적 기준 와인 수입액은 5억617만달러(약 6035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총 수입액은 전년(3억3002만달러·약 3934억원) 대비 50% 이상 급증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자료=한경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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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글로벌 물류 대란도 와인 수급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배로 들여오는 와인은 운송 일정이 2개월씩 지연돼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2020년 9월 미국 최대 와인 산지인 나파밸리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사고와 글로벌 이상기후에 따른 유럽 주요 포도 산지의 생산량 저하 등도 와인 공급량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나라셀라 관계자는 “지난해보다 올해 와인 수급 상황이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고 내다봤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