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동원F&B
사진=동원F&B
한국은 식문화 트렌드가 빨리 바뀌는 곳이다. 매년 히트 상품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만큼 많은 제품들이 빠른 속도로 기억에서 사라진다.

동원그룹이 1982년 처음 선보인 국내 최초의 참치캔 ‘동원참치’는 이 같은 시장 트렌드를 역행하는 제품이다. 동원참치는 지난 39년간 수많은 경쟁자의 도전에도 참치 통조림 시장에서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 지난달 기준 국내 시장 점유율은 80%에 달한다.

올 연말이면 동원참치의 누적 판매량은 70억 캔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판매된 동원참치를 일렬로 늘어놓으면 지구 열다섯 바퀴를 돌 수 있는 거리가 된다. 수직으로 쌓으면 에베레스트 산(8848m)보다 3만 배 더 높다.

동원F&B는 동원참치의 장수 비결로 ‘변화’를 꼽았다. 일반 소비자들이 보기엔 30년 넘게 한결같이 식탁 위를 지킨 동원참치는 언뜻 변화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반대다. 동원참치는 지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마케팅 전략을 치열하게 손보고, 혁신했다. 동원참치의 역사를 보면 동원그룹의 마케팅 전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상황 1 “참치캔이 뭔가요?”
도전 1 선진국형 식품으로 포지셔닝

“참치캔이 뭔가요?”
동원그룹이 1982년 국내에 처음 동원참치를 내놨을 때 수도 없이 들은 말이다. 1980년대 이전까지 참치캔은 일부 선진국에서만 먹는 음식이었다.

미국에선 수산캔하면 참치캔을 떠올릴 만큼 참치캔이 보편화돼 있었지만 국내에는 꽁치캔이 전부였다.

동원산업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처음 참치캔을 선보이는 만큼 무엇보다 ‘포지셔닝(positioning)’ 전략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동원산업이 선택한 참치캔의 위치는 ‘고급식품’ ‘선진국형 식품’이었다. 마케팅 대상도 중상류층으로 잡았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참치가 고급 어류인 점에서 착안해 출시 초기에는 지금과 달리 참치캔을 고급식품으로 마케팅했다”며 “당시에는 국민 소득 대비 참치 원어가격이 높아 참치캔이 실제로도 가격이 비싼 고급식품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동원산업은 소비자에게 고급식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광고를 활용했다. 당시 동원참치 광고에는 헬리콥터와 참치선망선이 등장한다. 어군탐지용 헬리콥터를 탑재한 최신 선망선으로 바다농장을 누비는 장면을 통해 참치의 고급생선 이미지를 강조했다.

참치캔 디자인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기존의 통조림 제품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거대한 참치가 바닷물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디자인을 넣어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해진 참치캔 선물세트도 출시 초기 고급화 전략에서 비롯됐다. 동원산업은 1984년 추석 명절부터 참치캔 선물세트를 내놨다. 당시 참치캔은 고급식품이었던 만큼 선물용으로 제격이었다.

이 해 추석에만 동원참치 선물세트는 30만 개 이상 팔려나가면서 선물세트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참치캔 선물세트는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선물세트가 됐고, 참치캔은 더 고급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상황 2 식상해진 참치캔
도전 2 편의식품·건강식품으로 변신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며 1990년대 초반까지 고성장을 거듭했다. 국민소득이 증가하면서 참치캔을 더 이상 고급식품으로 바라보는 소비자는 없었다.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자 동원도 전략을 달리했다. 고급식품 전략을 버리고 편의식품으로 친근하게 다가갔다. 기존 살코기참치 외에 야채참치과 고추참치 등 한국인 입맛에 맞는 다양한 가미참치캔을 개발해 선보였다. 1990년대 이후 참치캔은 학생들의 도시락 반찬이자 여행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들어 참치캔은 다시 입지를 위협받았다. 참치캔을 대체할 수 있는 편의식품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면서다.

동원은 또 한 번 참치의 이미지를 전환했다. 이번에는 건강식품이었다. 참치는 고단백 저지방 수산물로 칼슘, DHA, EPA, 단백질, 오메가6, 비타민 등 인체에 유익한 영양성분이 들어있는 건강식품이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는 편의식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통조림 식품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참치캔이 건강식품이라는 인식이 없었다.

동원F&B는 2000년 이후 ‘바다에서 온 건강’이라는 콘셉트를 앞세워 참치의 건강성을 부각시키는 광고와 홍보 등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동원F&B의 이 같은 전략은 건강을 지향하는 웰빙 트렌드와 맞물려 동원참치의 ‘제2의 전성기’로 이어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 연간 2000억원대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던 동원참치의 매출은 건강식품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날개 삼아 2011년 3000억원 문턱을 넘어섰다.
동원참치 미니언즈 팝업스토어 / 사진=동원F&B
동원참치 미니언즈 팝업스토어 / 사진=동원F&B

상황 3 신규 소비자의 부재
도전 3 MZ세대 타깃 마케팅

동원참치는 역사가 오래된 브랜드인 만큼 신규 소비자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동원F&B는 이를 위해 2010년대부터 MZ세대를 타깃으로 새로운 소비 트렌드에 맞춘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통해 동원참치의 이미지를 재미있고 젊은 감각으로 재탄생시켰다.

배우 조정석과 걸그룹 에이핑크의 손나은이 2019년 광고를 통해 선보인 ‘동원참치 송’은 중독성 있는 리듬과 재치 있는 가사로 MZ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중독성이 강하고, 리듬이 계속 뇌리에 남아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기 전에 들으면 안 되는 ‘수능금지곡’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EBS 연습생 펭수와 진행한 컬레버레이션이 큰 인기를 끌었다. 한정판으로 선보인 ‘펭수 참치’는 품절 대란을 겪기도 했다.

동원F&B는 MZ세대와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자체 개발한 캐릭터 ‘다랑이’를 통해 다양한 캐릭터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다랑이는 동원참치의 다랑어를 의인화한 캐릭터로 동원참치캔을 타고 바다를 떠다니며 세계여행을 하는 모습으로 동원참치가 가진 건강한 이미지에 앙증맞고 귀여운 느낌을 더했다.

동원F&B는 지난해 다랑이 캐릭터를 활용한 갤럭시 테마를 선보이기도 했다. 갤럭시 테마는 갤럭시 스마트폰의 바탕화면과 아이콘, 메시지 등의 요소를 통일감 있게 디자인한 것으로 다랑이 갤럭시 테마는 식품 산업과 정보기술(IT) 산업의 이종 업종간 성공적인 컬레버레이션 사례로 통한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

동원참치는 1982년 출시된 국내 최초의 참치캔으로 내년이면 출시 40주년을 맞는 브랜드다. 동원참치가 40년의 세월 동안 국민 식품의 위상을 유지하며 여전히 참치캔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유는 시대에 따라 급변하는 식문화 트렌드에 맞춰 끊임없이 혁신하며 새로운 가치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출시 초기에는 고급식품으로 출발해 국민소득이 올라간 뒤에는 편의식품으로, 웰빙 트렌드가 대세로 자리 잡자 건강식품으로 변신했다. 긴 세월만큼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젊고, 재미있게 바꾸기 위해 다양한 컬레버레이션을 진행하며 젊은 층에게도 다가갔다.

수십 년간 이름을 날린 메가 스테디셀러 브랜드도 변화와 혁신을 멀리하고 안주하는 사이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게 국내 식품시장이다. 동원참치의 40년 장수가 더 큰 의미가 있는 이유다.

박종관 기자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동원참치, 칠성사이다,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맥심 커피믹스, 부채표 활명수, 오리온 초코파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친근한 장수 브랜드들이다. 장수 브랜드를 마케팅 이론 관점에서 해석하면 고객들의 “습관적 구매”를 오랜 기간 잘 유지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습관적 구매(habitual buying)란 일반적으로 (1)저관여 제품이면서, (2)경쟁 브랜드 간의 품질 차이가 크지 않은 경우에 자주 발생한다. 위에 열거한 장수 브랜드들도 대부분 저관여 제품이고, 경쟁사 간의 맛, 품질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제품들에 해당한다.

이 경우 소비자들은 “문제인식-정보탐색-대안평가-태도형성-구매-구매후평가”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잘 거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해당 제품이 필요한 순간에 단순한 내적 탐색, 즉 ‘기억’을 통해서 특정 브랜드를 인출해내고 습관처럼 재구매한다. 구매 후 특별한 문제만 없다면 사후 평가도 하지 않고, 다음 번에도 그 브랜드를 또 구매한다.

때문에 습관적 구매 제품은 반복 광고를 통해 브랜드 친숙함(Brand Familiarity)을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사 제품을 반복적으로 노출함으로써 소비자의 인지적 구조에 자연스럽게 자리잡도록 만들어야 한다. 보통 저관여 제품이기 때문에 TV 광고에서 여러 말을 하는 것도 좋지 않다. 핵심적인 포인트, 재미있는 로고송 등을 활용해 단순하고 반복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시장에는 경쟁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고객들의 다양성 추구(Variety-seeking) 욕구를 자극해 기존의 구매 습관에서 벗어나길 기대한다. 브랜드 간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새로운 제품을 선택하도록 끊임없이 유도할 것이다.

따라서 습관적 구매 제품 마케터들의 목표는 소비자들이 기존의 구매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꾸준한 가격 할인과 프로모션, 반복 광고를 통해 브랜드 친숙함을 유지하고, 다양한 맛 출시, 새로운 포장, 신선한 콜라보레이션 등으로 기존 고객의 습관을 유지시켜야 한다.

이 모든 전략의 공통점은 고객들이 다른 브랜드 구매를 통해 다양성을 찾지 말고, “자사의 브랜드 내에서 다양성을 추구”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결국 저관여 제품은 기존 1등 기업의 “습관적 구매 유도”와 새로운 경쟁자의 “다양성 추구 유도” 간의 끊임없는 싸움이다. 한번 습관적 구매가 형성되었다고 1등 기업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동원참치처럼 오랜 세월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해야만’ 역설적으로 고객의 ‘변함없는’ 습관적 구매를 지킬 수 있다.

□ 최현자 서울대 교수

베스트셀러라는 말은 1895년 미국의 한 문예비평지가 대형 서점의 서적 판매 기록을 작성하면서 일반화 된 것으로 일정 기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도서를 가리킨다.

이에 비해 스테디셀러는 오랜 기간 생명력을 유지하며 소비자들로부터 꾸준히 호응을 얻는 도서를 일컫는다. 1960년대 후반 국내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스테디셀러라는 용어는 영어권 국가들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한국식 영어 표현이라고 한다.

베스트셀러는 짧은 기억에 의존하고, 스테디셀러는 긴 기억에 의존한다’는 말이 있다. 즉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의 차이가 이를 집계하는 기간의 길고 짧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베스트셀러는 ‘일정 기간 동안’이라는 제한이 있어서 한시적이고 단기적이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나 스테디셀러는 단기적이 아니라 중장기적이란 의미가 강하다.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는 이제 도서뿐 아니라 다양한 상품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동원참치는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1982년 국내 최초의 참치캔으로 등장해 지난 39년간 줄곧 1위 자리를 지켜왔으니 베스트셀러이면서 스테디셀러라는 칭호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베스트셀러=짧은 기억’과 ‘스테디셀러=긴 기억’이란 점을 동원참치에 적용해보자. 동원참치는 고급식품→편의식품→건강식품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혁신시켜 왔다.

출시 초기에는 고급식품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기반이었다. 국민소득이 증가하면서 참치캔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자 편의식품을 앞세워 두 번째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2000년대 들어 다른 편의식품이 쏟아져 나오자 건강식품을 세 번째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기반으로 삼았다.

이처럼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계속해서 유지하면서 소비자들의 긴 기억 속에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건강식품의 이미지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으니 머지 않아 네 번째로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한 기반이 필요할 것 같다.

MZ세대를 타깃으로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마케팅은 그런 의미에서 네번째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될 것 같다.

고급식품→편의식품→건강식품 그리고 다음은 어떤 식품으로 불리울까? 동원참치가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어져온 고민이 이번에도 “미래의 소비자는 ‘참치’라는 식품으로부터 무엇을 추구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답은 언제나 소비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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