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에서 혼자 사는 김지은 씨(20대·가명)는 장을 볼 때가 되면 마트에 가는 대신 방 침대에 눕는다. 스마트폰을 들고 e커머스 앱에 접속해 햇반과 휴지, 생수를 장바구니에 넣는다. 결제 후 빠르면 5~10분, 늦어도 30분 안에 문에서 ‘똑똑’ 소리가 난다. 문 앞에는 봉투에 담긴 상품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직접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보다도 빠르다.

주문 후 30분 안에 제품을 배송하는 ‘퀵커머스’ 시대가 왔다. 밤에 주문한 제품을 다음날 새벽에 받는 새벽배송, 아침에 주문한 제품을 오후에 받는 당일배송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분 단위 즉시배송’ 서비스다. 개척자인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배달 플랫폼에 이어 최근 쿠팡과 오아시스마켓, 현대백화점, GS리테일 등 유통업체들이 잇따라 뛰어들며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 점점 더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찾는 소비자들의 수요와 격변기 e커머스 물류 경쟁이 맞물려 탄생한 배송 서비스의 ‘끝판왕’이란 분석이다.
새벽배송도 늦다…온종일 '30분 배송' 시대

현대百, 압구정서 퀵커머스 시범운영

현대백화점은 이달 말부터 서울 압구정동에서 백화점 식품관의 신선식품을 주문 30분 내 배송해주는 ‘신선식품 즉시배송 서비스’를 시범운영한다고 18일 밝혔다. 압구정본점 반경 3㎞ 내 소비자들은 식품 전문 온라인몰 ‘현대백화점 투홈’에서 과일과 채소, 정육 등 신선식품 60여 종을 주문할 수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이 서비스를 위해 현대자동차그룹과 손잡았다. 현대차그룹은 전기 트럭인 포터EV에 냉장·냉동 등 콜드체인 시스템을 적용해 ‘이동형 소규모 물류센터(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MFC)’로 특별 개조했다. 이 이동형 MFC 4대가 압구정본점 인근을 돌아다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배송한다. 배송 차량이 작은 물류창고를 통째로 싣고 다니며 제품을 그때그때 빼 가는 식으로 배송 시간을 단축했다.

앞서 쿠팡은 이달 초 서울 송파구에서 식품 및 생필품을 15분 내 배송하는 퀵커머스 ‘쿠팡이츠 마트’의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GS리테일은 자체 앱 ‘우딜-주문하기’로 편의점 GS25와 GS수퍼마켓 제품을 배달하고 있다. 최근 배달 플랫폼인 요기요 인수전에 참여한 것을 두고 퀵커머스 확대를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통업체와 물류업체가 뭉친 사례도 있다. 물류 브랜드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와 신선식품 새벽배송 기업 오아시스마켓은 주식회사 브이란 합작법인(JV)을 세워 연내 퀵커머스 플랫폼을 출시할 계획이다.

“새벽배송처럼 보편화될 것”

퀵커머스 시장을 키운 건 30분~1시간 내 음식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배달 플랫폼이다. 이들은 음식배달 서비스 노하우를 기반으로 생필품 등을 배달하기 시작했다. 배달의민족이 2019년 출시한 ‘B마트’와 요기요가 지난해 시작한 ‘요마트’는 주문 후 30~40분 안에 생필품과 신선식품 등을 배송해준다.

초기에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주문 직후 배송하려면 상품 재고와 배송 기사들이 상시 준비돼 있어야 한다. 자금과 인력이 대규모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집 앞 편의점에 가는 대신 배달비 2000~3000원을 내면서 주문할지도 미지수였다.

코로나19 사태가 소비자들을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바꿔놓았다. 재택근무와 집밥 문화가 일상이 되며 온라인 장보기 수요가 급증했다. 비싸다 여겼던 배달비는 안전과 편리함의 당연한 대가로 자리잡았다.

유통업계에선 퀵커머스가 e커머스 시장의 새로운 서비스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임수연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마켓컬리가 처음 선보인 새벽배송도 쿠팡과 신세계그룹 통합 온라인몰 쓱닷컴이 참전하며 e커머스의 주력 서비스가 됐다”며 “퀵커머스도 시장 참여자가 늘고, 편리함을 경험한 소비자들이 많아지면 ‘대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쿠팡 등 대형 유통업체의 참전은 퀵커머스 시장 구도를 바꿔놓을 것이란 전망이다. 전국 170여 개 물류기지를 구축한 쿠팡, 1만5000여 개 오프라인 점포를 가진 GS리테일 등은 물류 기반이 없던 배달 플랫폼과 출발선부터 다르다. 오랜 기간 쌓아온 제품 소싱 역량과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퀵커머스가 대형마트, 편의점 등 오프라인 장보기 수요를 대체할 것”으로 전망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