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 내 시스템통합(SI) 및 물류 분야의 내부거래 공시 의무화를 강행하면서 경제계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기업들에 SI 및 물류 관련 거래 현황을 공시하라고 강제할 근거가 빈약하고, 각 기업이 해당 업종의 데이터를 정확하게 뽑아내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공정위는 31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회사의 중요사항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공정위는 내년 5월부터 개정안을 시행할 계획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대기업 계열사들은 그룹 내 물류 및 SI 계열사와 거래 시 그 현황을 연 1회 공시해야 한다. 물류 및 SI 전담 회사가 없는 대기업집단 내 기업들은 물류 및 SI 관련 내부거래를 모두 찾아 공시해야 한다. 기업들의 공시를 토대로 일감 몰아주기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의미다. 현재는 업종 구분 없이 대기업집단 내부거래 총액만 연 1회 공시하면 된다.

경제계에서는 특정 업종의 내부거래 현황을 모두 공시하라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하는 업종을 공정위가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오히려 기업 공급망의 핵심인 물류와 SI는 일감 몰아주기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떤 거래가 물류 및 SI 관련 거래인지 구분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비판도 많다. 10대 그룹의 한 부사장은 “기업들은 내부거래 중 SI나 물류 등 업종별로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매년 수천~수만 건의 거래를 수작업으로 분류해야 할 판”이라고 꼬집었다. SI와 물류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개별 부서나 직원들이 활용하는 택배 및 퀵서비스 거래가 대표적이다.

국내 주요 기업은 지난 1월 공정위가 주최한 설명회 직후 직간접적으로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정위는 기업들의 의견을 거의 반영하지 않고 행정예고했다고 경제계 관계자는 전했다.

공정위는 상당수 대기업이 운영 중인 공익법인 관련 공시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이 공익법인과 자금·유가증권·자산·상품·용역을 내부거래할 경우 1년에 한 번 공익법인별로 거래 내용을 공시하도록 바꾼 것이다.

공정위가 해마다 기업 공시 항목을 늘리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한 로펌 관계자는 “공시 내용이 점점 방대해지면서 공시 담당자들이 실수로 공시를 누락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며 “대기업의 업무 부담과 한계 공시관리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공정위는 “기업들의 문제제기를 수용해 업무 부담을 최소화할 것”이라며 “특정 규모 이상의 내부거래만 관리·감독하도록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훈/도병욱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