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올초를 전후해 두 가지에 충격받았다고 한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플랫폼 사업자가 쇼핑에 뛰어들었을 때의 위력을 절감한 것이 첫 번째다. 코로나19는 ‘클릭 소비’에 속도를 붙이며 이마트가 1993년 이후 30년 가까이 누려온 아성을 위협했다.
100조에 놀라 뭉친 '反쿠팡 연합'…SSG닷컴도 뉴욕 상장하나
쿠팡이라는 ‘별종(別種)’이 가한 충격은 더 컸다. 기업가치 40조원 얘기가 들리더니 미국 증시 상장 직후 시가총액이 100조원을 넘어섰다. 이마트(약 5조원)의 20배다. 정 부회장은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소식을 발표한 지난달 12일 미국에 머물고 있었다.

신세계가 네이버와 손을 잡기로 한 것은 ‘오월동주(吳越同舟)’에 비유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더 큰 적(쿠팡)에 대항하기 위해 옆의 적과 손을 잡았다는 해석이다. 161조원 규모의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을 넘어 유통 패권을 누가 쥐느냐의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쿠팡 충격’이 부른 의외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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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회사의 제휴는 온·오프라인 유통 1위사 간 결합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신세계그룹과 네이버 이용 고객은 각각 2000만 명, 5400만 명이다. 양사는 멤버십 통합도 논의 중이다. 이마트 등 신세계 사업장에서 네이버페이를 사용하고 적립할 수 있다는 얘기다. 로켓배송과 쿠팡이츠(음식 배달), 쿠팡 플레이(OTT 서비스) 등으로 충성도 높은 이용자 확보에 혈안인 쿠팡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이다.

네이버는 신세계가 갖고 있는 물류, 상품 역량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신세계는 편의점(이마트24, 5200여 개)과 이마트 매장(150개)을 포함해 약 7300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배송 거점으로 바꾸고 있다. 용인, 김포에 있는 SSG닷컴의 풀필먼트센터(온라인 주문용 상품 보관부터 배송까지 일괄 처리하는 물류시설)는 신선식품 배송에 특화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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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는 물류 분야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작년 10월 CJ대한통운과 3000억원 규모의 주식 교환을 단행했다. 쿠팡의 거침없는 공격에 대비해 쇼핑 분야의 최약점으로 꼽히는 물류 분야를 신세계, CJ라는 범(汎)삼성가를 끌어들여 서둘러 보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세계는 인공지능(AI), 로봇 등 첨단 기술을 적용한 쇼핑의 구현에 네이버의 기술력을 활용할 계획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스타필드 등 대형 매장에서 AI 상품 추천을 결합한 AR(증강현실) 내비게이션 서비스, 네이버랩스 기술을 활용한 자율주행 카트 개발 등 차별화한 리테일테크 서비스를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물류 공동 투자도 검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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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가 같은 깃발 아래 서기로 했지만 화학적인 결합 효과를 낼지에 대해선 의문의 목소리도 많다. 물류 협력만 해도 장밋빛 전망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쿠팡식 물류의 최대 장점은 공급망 관리에서부터 창고관리 시스템과 배송 직원의 상하차 솔루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하나로 통합했다는 점”이라며 “단순히 여러 물류 거점을 산술적으로 합치는 것만으로는 따라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세계와 네이버가 물류 분야 공동 투자를 검토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신세계그룹이 자칫 네이버의 ‘우산’ 안으로 들어가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신선식품과 ‘럭셔리’ 분야의 강점을 내세워 SSG닷컴은 그동안 독자적인 쇼핑 플랫폼 구축에 공을 들여왔다. 이번 제휴로 이마트도 ‘네이버 장보기’에 입점할 예정이다.

투자은행(IB)업계 전문가는 “네이버를 정점으로 이뤄지고 있는 합종연횡은 쿠팡에 대항하기 위해 일단 덩치를 키우겠다는 측면이 크다”며 “신세계그룹이 이베이코리아 인수에도 상당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네이버와의 제휴와 M&A(인수합병)를 통해 SSG닷컴 상장 시 몸값을 최대한 높여 받기 위한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쿠팡처럼 SSG닷컴을 미국에 상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동휘/김주완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