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사비 1억 기부한 '키다리 아저씨' 진옥동 신한은행장
박모군(17)은 지난해 꿈에 그리던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기초 생활수급비를 받는 형편이어서 2년 전만 해도 미술 학원에 다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굿네이버스에 들어온 기부금을 지원받아 학원에 갈 수 있게 됐다. 박군의 어머니는 “아이의 재능을 알아본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미술 공부를 시작했지만 홀로 공부를 해야 해 마음이 아팠었다”며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군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운 것은 진옥동 신한은행장(사진)이다. 진 행장은 2019년 취임 후 굿네이버스를 통해 ‘남몰래 선행’을 이어온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사비로 기부한 1억여원은 13명의 학생들이 꿈을 이루는 데 쓰여졌다.

정모양(19)도 진 행장의 도움을 받았다. 굿네이버스는 진 행장의 기부금으로 바리스타를 꿈꾸는 정양에게 학원 수강료와 기자재, 노트북을 지원했다. 이에 몇 달 만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는 등 개인 카페 창업을 위한 커리어를 쌓고 있다.

진 행장은 사적 기부를 이어오면서도 이를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굿네이버스의 블로그를 통해 뒤늦게 선행이 알려졌다는 것이 주변의 설명이다. 본인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기부 배경이 됐다. 상고 출신인 진 행장은 은행권에서 ‘고졸 신화’로 불린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그는 1970년대 덕수상고에 입학했다. 이후 1980년 기업은행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해 1986년 신한은행으로 옮긴 뒤 행장 자리까지 올랐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당시 덕수상고에는 형편은 어렵지만 학업에 재능이 있는 인력이 많이 모였다”며 “은행 채용 인원의 20~30%를 차지할 정도여서 ‘금융권 사관학교’로 불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진 행장은 2020년 7월 굿네이버스 네이버 블로그에 남긴 글을 통해 소회를 언급했다. 그는 “일찍이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이사를 자주 다니며 어렵게 공부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며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경제적인 어려움이 아이들의 꿈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어떤 부분보다 아이들의 교육을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부금을 전달하게 됐다”며 “금융회사의 CEO(최고경영자)로 일하고 있지만, 물질의 가치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관심과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진 행장 취임 이후 신한은행도 아동을 위한 사회 공헌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네이버 해피빈과 함께하는 ‘좋은 날 좋은 기부’는 임직원들이 본인의 승진, 합격, 출산, 수상 등 ‘좋은 날’을 기념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프로그램이다. 매년 기부금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동 보육시설 어린이들에게 입학 축하 용품을 선물하는 데 사용한다.

정소람/김대훈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