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간 취급 받아도 여전히 할리우드 맴돌던 액션배우 릭…인기 끌었던 캐릭터로 속편 만들면 흥행할 수 있을까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에서 한물간 액션배우인 릭(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분)은 단역을 전전한다. 한 촬영현장에서 책을 읽으며 자신의 촬영 순서를 기다리던 릭. 책의 내용을 묻는 여덟 살 아역배우의 질문에 갑자기 북받쳐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책 주인공이 ‘젊어선 최고였지만 부상을 당한 뒤 점차 쓸모가 없어지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꼭 최고가 아니라도…

한물간 취급 받아도 여전히 할리우드 맴돌던 액션배우 릭…인기 끌었던 캐릭터로 속편 만들면 흥행할 수 있을까
릭은 책 주인공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젠 최고가 아니야. 최고와 거리가 멀지. 그래도 받아들이고 있어. 매일 조금씩 쓸모없어진다는 걸.” 이후 이어진 촬영에서 릭은 ‘인생 연기’를 펼친다. “내가 본 최고의 연기였다”는 감독과 동료 배우들의 칭찬에 릭은 눈시울을 붉힌다.

릭은 할리우드를 떠나 이탈리아에서 ‘스파게티 웨스턴(이탈리아식 서부영화)’을 찍어보자는 캐스팅 디렉터 마빈(알 파치노 분)의 제안을 수락한다. 자신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시장을 이동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임금격차설’에 따르면 노동력은 대체로 임금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이탈리아 액션물 주연을 맡은 릭은 적지 않은 돈을 번다. 하지만 이탈리아 영화 네 편을 찍은 릭이 돌아온 곳은 다시 할리우드다. 당장 돈을 벌지 못한다 하더라도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지, 할리우드가 지닌 매력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샤론을 살려낸 까닭은

릭이 형제처럼 지내던 전속 스턴트맨이자 로드매니저인 클리프(브래드 피트 분)에게 “형편이 안 된다”며 해고를 통보한 날, 둘은 릭의 할리우드 집에서 마지막으로 술을 함께 마신다. 그리고 그날 찰스 맨슨 일당이 그 집에 쳐들어온다. 실존 인물인 찰스 맨슨은 1969년 폴란스키 감독의 집에 침입해 임신 중이던 감독의 아내이자 배우 샤론(마고 로비 분)을 비롯한 5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샤론 테이트 사건’의 범죄자다. 다행히도 영화는 끔찍했던 실제 사고와는 다르게 흐른다. 그날 밤의 잔혹했던 살인마들은 액션배우인 릭과 스턴트맨 출신인 클리프에게 말 그대로 ‘박살’이 난다. 현실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맞았던 샤론도 영화 속에선 무사하다. 이 일을 계기로 샤론이 릭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릭이 그토록 바라던 것처럼 폴란스키 감독과 친분을 쌓을 기회를 얻은 것이다.

영화가 실제와 달리 샤론을 살린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의 ‘희생자’로만 기억됐던 재능있는 배우 샤론을 영화에서나마 구해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 크게 보면 이 영화는 수많은 배우와 감독이 꿈을 품고 모여드는 기회와 낭만의 땅, 할리우드 그 자체에 대한 헌사인 것이다.

릭의 화려한 시절 캐릭터가 스핀오프로 제작된다는데

영화에서 릭은 ‘마운티 로’라는 서부극에서 주연을 맡아 한때 인기를 누린 인물로 그려진다. 만나는 사람마다 릭의 실제 이름이 아니라 극 중 캐릭터(제이크 케이힐)로 부를 정도다. 그가 가장 잘나가던 시절도 이 제이크 케이힐이란 캐릭터로 여러 작품에 연이어 등장했을 때다. 그런데 릭이 극 중에서 제이크 케이힐로 분한 이 작품을 머지않아 TV에서 볼 가능성이 커졌다. 이 영화의 감독인 쿠엔틴 타란티노가 ‘마운티 로’를 드라마로 제작하겠다고 최근 밝혔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등장한 작품을 스핀오프(오리지널 영화나 드라마를 바탕으로 새롭게 파생돼 나온 작품)로 다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영화계에선 성공한 작품의 캐릭터를 활용하거나 전후 이야기를 다루는 속편이 나오는 사례가 많다. 성공한 작품의 후속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마케팅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전편이 재미있고 완성도가 높았다면 속편 역시 그럴 것으로 관객들은 추론한다. 극 중 세계관에 몰입하거나 캐릭터에 애정을 품는 팬까지 생기면 흥행은 더 쉬워진다. 시리즈 개봉 때마다 결근과 결석이 속출한다는 스타워즈(현재까지 총 11편)와 해리포터(총 8편), 마블(총 23편) 시리즈 등이 대표적이다. 넓게 보면 소설이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도 일종의 ‘속편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영화가 ‘경험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경험재는 실제 소비하기 전까지는 그로 인해 얻게 될 효용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품을 뜻한다. 대표적인 게 영화와 책 같은 콘텐츠 상품이다. 직접 극장에서 확인하거나 책을 펴들기 전까진 자신이 얻을 효용을 미리 알기 힘들다. 부품의 성능이 숫자로 표현돼 효용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컴퓨터 같은 ‘탐색재’와 다르다. 경험재 시장에서 성공한 작품의 속편이라는 사실은 선택을 앞둔 관객이 느끼는 불확실성을 크게 줄여준다.

물론 모든 속편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모(母)브랜드인 전편이 높은 브랜드 자산을 갖고 있어야 속편 제작이 가능하다. 전편의 브랜드만 가져오고 상품 내용이 크게 다르다면 관객은 실망해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전편과 속편이 너무 비슷해도 실패 확률이 커진다. 같은 상품을 반복해서 소비할 경우 추가 소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한계효용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고은이 한국경제신문 기자 koko@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경제재와 자유재, 소비재와 생산재, 대체재·보완재·독립재·결합재, 정상재와 열등재, 탐색재·경험재·신용재 등 재화의 종류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② 영화업계에서 ‘속편은 전편만 못하다’는 2년차 징크스(소퍼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가 일반적인데 ‘스타워즈’ ‘어벤져스’ 등 전편보다 더 흥행에 성공하는 작품들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③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처럼 한국 영화가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경제적 요인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