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화 안전판 확충을 위해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을 저울질하자 적정 외환보유액 규모를 놓고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한편에선 외환보유액이 지금도 충분한 만큼 추가 외평채 발행이 불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른 한편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 외환보유액을 더 쌓아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10일 관계부처와 금융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외평채를 발행하기 위해 미래에셋대우와 JP모간,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등을 주관사로 선정했다. 기재부는 3분기에 15억달러 규모의 외평채를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200억弗 vs 5660억弗…'적정 외환보유액' 논쟁 재점화
투자은행(IB) 관계자들은 지난 6월 말 외환보유액(4107억5000만달러)이 사상 최대치에 달하기 때문에 외평채를 발행할 유인이 크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연간 외평채 이자비용만 약 3000억원에 이르는 데다 외평채 발행이 일반 기업의 외화자금 조달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미국이 홍콩달러 페그(연동)제를 무력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외환시장 변수가 적잖은 점을 고려할 때 외환보유액을 더 쌓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 자본시장은 신흥국 가운데 수급 여건이 비교적 좋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이면 외국인이 우선적으로 한국에서 투자금 회수에 나서며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적정 외환보유액 규모에 대해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은 없다. 다만 국제금융시장에서 몇몇 참고 기준이 활용되는데, ‘그린스펀-기도티 룰’이 그중 하나다. 그린스펀-기도티 룰은 유동외채와 석 달치 수입액을 합친 금액을 적정 외환보유액 규모로 보는 룰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은 3184억4600만달러로 추산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방안도 또 다른 참고 자료로 활용된다. IMF는 △연간 수출액의 5% △통화량(M2)의 5% △유동외채의 30% △외국인 증권 및 기타투자금 잔액의 15% 등 네 가지 항목을 합한 규모의 100~150% 수준을 적정 외환보유액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른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은 3769억8000만~5611억1000만달러다.

국제결제은행(BIS)은 2004년 적정 외환보유액 기준으로 석 달치 수입액과 유동외채, 외국인 주식 투자자금 3분의 1을 합친 금액을 제시했다. 이 기준으로 산출한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은 5655억5000만달러다.

한국은행 국제국 관계자는 “최근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채권시장에 순유입되고 있다”며 “외부에서 외환보유액을 비롯한 한국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안정적이라고 보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