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은 올 들어 행사를 줄줄이 중단했다. 이달 중 미국 하와이에서 열기로 했던 LPGA 롯데 챔피언십을 비롯해 롯데월드타워에서 매년 봄 진행하는 수직마라톤 대회와 불꽃축제 등 대형 이벤트가 모두 무기한 연기 또는 취소됐다. 행사 대행을 맡은 롯데그룹의 광고대행사 대홍기획은 큰 타격을 입었다. 회사 관계자는 “기업들의 비용 절감 1순위가 마케팅과 광고비”라며 “올 사업은 시계 제로(0)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감 반토막"…광고시장 '상실의 시대'
면세점·가전 등 광고 취소 잇달아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광고대행사의 수주 실적이 이달 들어 급감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주요 행사가 잇달아 취소되고 기업들의 광고 집행도 줄어든 탓이다.

대홍기획은 그룹 내 최대 광고주 중 하나인 롯데면세점 광고가 뚝 끊겼다. 해외관광객 급감과 국제선 운항 중단, 면세점 ‘매출 절벽’이라는 연쇄 충격에 직면하면서 대대적 비용 절감에 들어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면세점이 지난달부터 광고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며 “대홍기획 수주 물량은 예년 대비 절반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계열의 제일기획, 현대자동차그룹의 이노션, LG그룹의 HS애드 등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노션은 현대차 신차 출시 행사가 온라인 중계 방식으로 바뀌면서 행사 관련 예산이 제로 수준으로 삭감됐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의 영업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연초 계획했던 마케팅 일정을 줄줄이 취소하고 있다. 한 광고대행사 관계자는 “글로벌 소비가 급격이 위축되면서 가전 등 내구 소비재 관련 광고 시장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전했다.

7월 예정됐던 도쿄올림픽 연기도 악영향을 미쳤다. 하계 올림픽이 있는 해에는 글로벌 브랜드가 신제품 출시와 함께 대대적인 광고에 나서면서 ‘큰 장’이 서지만 올해는 ‘올림픽 특수’가 사라졌다. 또 다른 광고대행사 관계자는 “방송사 기준 지난달 광고 집행 금액이 작년보다 30%가량 줄었다”며 “대형 광고주들이 상반기 예산을 하반기로 미루거나 연간 예산을 다시 짜고 있다”고 했다.

영화관에 손님이 뚝 끊긴 점도 광고계에 타격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 결과 지난달 전체 극장 관객 수는 183만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87.5% 급감했다. 영화 관객이 급감하자 광고주들은 영화 상영 전에 내보내는 10분 분량의 광고 효과가 미미하다고 판단해 광고비를 낮춰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광고경기동향지수는 올 들어 3월까지 석 달 연속 100 이하로 나타났다. 이 지수가 100을 넘으면 전월 대비 광고비 실제 집행이 많고, 100 미만이면 반대를 뜻한다. 광고대행사들의 실적 추정치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최근 제일기획의 올 1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를 430억원에서 320억원으로 낮춰 잡았다. 이노션 영업이익 추정치도 329억원에서 260억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옥외 광고도 줄줄이 타격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이동이 줄자 버스 지하철 등 옥외 광고 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지하철 5·7·8호선과 신분당선 역사 내 광고를 대행하는 나스미디어는 지난달 광고 수주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 이상 줄었다.

버스 광고는 타격이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버스 광고대행사들은 서울시 및 서울교통공사 등에 일정 금액(임차료)을 납부한 뒤 광고를 수주해 이익을 낸다. 광고가 줄어들면 대행사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나스미디어 관계자는 “지하철이나 버스 광고는 중소업체가 주로 의뢰해 코로나19에 따른 타격이 더 크다”고 말했다.

광고대행사 상황이 악화되자 일부 공공기관은 이들이 내야 할 임차료를 감면해 주기 시작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제1·2터미널 광고판 등을 운영하는 사업자 임차료를 지난달부터 8월까지 20% 감면해 주기로 했다. 공사 관계자는 “3개월간 무이자 납부 유예도 해 주기로 했다”며 “감면 금액은 매월 7억원 규모”라고 말했다. 인천교통공사도 지하철 역내와 전철 안 20개 광고대행 사업자들의 임차료를 지난달부터 7월까지 35% 낮추기로 했다.

노유정/인천=강준완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