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이 거래 기업의 대(對)이란 제재 위반 사건에 대해 8600만달러(약 1050억원)의 벌금을 내기로 미국 사법당국과 합의했다.

21일 기업은행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검찰은 2014년 5월부터 국내 무역업체 대표 정모씨의 이란 허위거래와 관련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업은행을 조사해왔다.

미국은 2010년 이란에 대한 초강력 경제 제재인 ‘세컨더리 보이콧’을 발동했다. 이란 원유를 수입하는 제3국과 미국 기업이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게 골자다. 다만 이란 원유 수입량이 많은 한국은 예외국으로 인정돼 한국 내 개설된 이란 측 원화 계좌의 자금 반출을 막는 걸 조건으로 거래가 허용됐다.

그럼에도 2011년 미국 시민권자였던 재미동포 정씨는 기업은행 계좌를 통해 이란 자금 1조948억원을 받았다. 두바이 대리석을 판매하는 중계무역 형식으로 이란과의 거래를 위장했다. 정씨는 이란 자금 가운데 1조700억원을 자신의 아들 명의의 미국 회사 등 여러 군데로 나눠 송금했다.

한·미 사법당국은 곧바로 정씨와 기업은행을 기소했다. 기업은행은 송금 중개 과정에서 정씨의 위장거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미국의 자금세탁방지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았다. 한국 검찰에선 고의가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번 합의로 사건이 일단락되면서 기업은행은 이란 제재 위반 관련 리스크를 해소하게 됐다. 벌금 규모도 예상보다 작게 책정됐다는 게 금융권의 평가다. 기업은행은 8600만달러 중 5100만달러를 미 검찰에, 3500만달러는 뉴욕주금융청에 각각 내야 한다. 이미 쌓아둔 충당금으로 벌금을 납부할 계획이다. 미 검찰은 자금을 중개한 기업은행 뉴욕지점에 대한 기소도 2년간 유예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이미 벌금 이상의 충당금을 충분히 적립해뒀기 때문에 올해 회계상 손실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