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복합쇼핑몰과 아울렛에 입점한 상인들에게 매출이 줄어들면 ‘임대료를 깎아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로 했다. 쇼핑몰과 아울렛은 요청을 받으면 2주 안에 협상에 응해야 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분쟁조정협의회가 조정에 나선다. 유통업계에서는 “매출이 줄 때마다 임대료를 깎아준다면 임대 계약서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규모유통업법 적용 대상이 된 복합쇼핑몰과 아울렛에 대한 표준거래계약서를 마련해 14일 공개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들 업종 매장 임차인(입점 상인이나 업체)의 귀책 사유가 없는데도 매출이 현저하게 감소하면 임차료 감액을 요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임차료 감액 요청 사유는 △매장 인근에 동종 또는 유사 업체를 협의 없이 입점시키는 경우 △매장 개편으로 위치·면적·시설 등이 변경되는 경우 △매장 주변 환경의 현격한 변화, 물가 또는 기타 경제 여건의 변동 등 부득이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 등이다.

유통업체들은 임차인의 임차료 감액 요청이 있으면 14일 이내에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만약 업체가 협의를 개시하지 않거나 협의 중단 의사를 표시하면 임차인은 분쟁조정협의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업체가 표준거래계약서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는 강제 규정은 없다. 하지만 공정위는 미도입 업체는 법 준수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직권조사 등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백화점 대형마트 등을 운영하는 대규모 유통업체들은 관련 업종의 표준거래계약서 내용을 자사 계약서에 모두 반영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모호한 표현이 너무 많다”며 “예를 들어 ‘매출의 현저한 감소’라는 게 어느 정도의 감소폭을 말하는 건지, ‘기타 경제 여건의 변동’이라는 게 뭘 의미하는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경제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면 사드 사태와 같은 외부 요인 때문에 매출이 줄어도 임대료를 낮춰줘야 한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동종 업체들이 모였을 때 집적효과가 생길 수도 있는데 되레 이를 악용해 임대료를 낮춰달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됐다”며 “임대료 설정은 유통업체의 고유권한인데 이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이날 면세점 표준거래계약서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면세점은 직매입(유통업체가 직접 상품을 구매해 판매하는 방식)한 상품의 납품 대금을 ‘상품 입고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지급해야 한다.

이태훈/안효주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