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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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월성 원자력발전소의 핵폐기물 저장시설을 직접 보고 나니 당초 예상한 것보다 훨씬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추가 건설(7기) 표결 때 찬성표를 던졌다.”(장찬동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지난 10일 서울 세종대로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제113회 회의. 세 번째 안건으로 올라온 ‘경북 경주시 월성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보관시설(맥스터) 추가 건설안’이 3시간여 난상토론 끝에 표결에 부쳐졌다. 결과는 원안위원 8명 중 6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 위원 중 일부가 작년 12월 20일 현장 답사를 다녀온 게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날 표결로 월성 2~4호기는 내년 11월 일제히 가동 중단될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약 19개월의 인허가 및 건설 기간을 거쳐 내년 10월 말 맥스터를 완공할 수 있게 돼서다.

‘맥스터 증설’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

작년 말 맥스터 건설 부지를 답사한 원안위원은 이경우·김호철·김재영·장찬동 위원 등 4명이다. 작년 11월 22일 111회 회의 때 맥스터 추가 건설 안건이 보류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안전한지 실제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철강제련·공정 전문가로 꼽히는 이경우 위원(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은 지난 11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11월 회의 때 의견 차가 워낙 크다 보니 현장에 가본 뒤 다시 논의하자는 제안이 나왔다”며 “거대한 콘크리트가 방사성 물질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역시 24시간 감시한다는 걸 확인한 뒤 일부 위원 생각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장 위원은 “나는 원래 탈원전이나 친원전 중 한쪽을 대변하는 입장이 아니었다”며 “저장시설 뒤쪽에 비탈이 있어 (산사태 등이) 좀 우려됐는데 이미 보완이 끝나 있더라”고 했다. 그는 “탈원전 진영에서 지나치게 경직적으로 사안을 보는 건 문제”라며 “우리나라 현실에서 원전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장 답사에 동행한 원안위원 4명 중 김호철 위원(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을 제외한 3명이 이번 맥스터 증설에 찬성했다. 김 위원은 진상현 위원(경북대 행정학부 교수)과 함께 ‘탈원전 신념’을 지닌 대표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단독] "核폐기 시설 안전"…답사 후 위원 4명 중 3명 증설찬성했다
“원전 외 전력공백 메울 대안 없다”

원안위가 증설 허용을 결정한 데는 “맥스터 증설이 이뤄지지 않으면 내년 말 국가 전력수급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형 원자로 개발책임자였던 이병령 위원(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3년 반 넘게 맥스터 증설을 검증한 뒤 안전하다고 최종 결론 낸 사안에 대해 전문성 없는 일부 위원들이 반대했던 것”이라며 “지금으로선 원전의 전력 공백을 메울 대안이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전 24기 중 중수로형은 월성 2~4호기뿐이다. 중수로형은 농축우라늄을 쓰는 경수로형과 달리 천연우라늄을 사용하기 때문에 매일 연료를 넣어줘야 한다. 충분한 열을 생성하지 못해 교체되는 사용후핵연료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이번 맥스터 증설 안이 의결되지 않았다면 내년 11월부터 월성 원전을 한꺼번에 멈춰 세우는 방법 외엔 없었다”며 “과격한 방식의 탈원전이 현실화할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태양광 발전 설비가 연간 3기가와트(GW) 이상 증설되고 있지만 월성 원전 2~4호기(2.1GW)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 역시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태양광은 해가 떠 있을 때만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 이용률이 15%에 불과하다”며 “재생에너지 설비를 매년 6배가량 더 짓지 않는 한 원전 대체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호철·진상현 위원만 ‘맥스터 증설’ 반대

김호철·진상현 위원은 맥스터 증설을 끝까지 반대했다. 김 위원은 “맥스터에 항공기(드론) 테러가 발생할 경우 막을 수단이 있느냐”며 이의를 제기했다. 다만 그는 표결 후 “사고관리계획서 등 좀 더 검토할 게 많다는 점에서 아쉽긴 하지만 이의신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 위원도 “안전성 여부를 판단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며 “반대표를 던졌지만 결과엔 승복할 것”이라고 했다.

맥스터 추가 건설이 의결되지 않았을 경우 발생할 우려가 있던 전력수급 문제에 대해 진 위원은 “원안위는 안전성을 판단하는 기관이지 전력수급 영향을 평가하는 곳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조재길/구은서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