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겨울·수상한 바다…魚라, 물고기 지도가 다 바뀌었네!
‘봄 주꾸미’란 말이 있다. 1년 내내 잡히지만 산란기 직전 물이 따뜻해지는 3~4월에 알이 꽉 차올라 붙여진 말이다. 올해는 다르다. 1월 들어 충남 보령 오천항 인근에서 잡히는 주꾸미는 열 마리 중 두세 마리가 알이 차 있다. 오천항 어촌계 관계자는 “겨우내 춥지 않아 벌써 알이 차기 시작했다”며 “20년 만에 처음 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따뜻한 겨울이 어업의 달력과 지도를 바꿔놓고 있다. 수온 상승으로 제철 생선이 달라지고, 특정 어종이 주로 잡히는 해안도 변화하고 있다.

동해 3대 수산물도 바뀌고

따뜻한 겨울·수상한 바다…魚라, 물고기 지도가 다 바뀌었네!
지난 12일 강원 속초와 주문진 일대 횟집의 수족관에는 겨울 동해의 상징이던 오징어보다 방어가 더 많았다. 방어는 지방이 차오르고 기생충이 죽는 겨울에 가장 맛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겨울 주산지는 제주도. ‘겨울 대방어’는 오랫동안 제주 특산물 자리를 지켰다. 이 방어가 작년부터 동해 특산물이 됐다. 수온이 올라 제주로 내려가지 않고 동해에 머물면서 지난해 경북 울진과 영덕 일대에서만 약 3500t의 방어가 잡혔다. 지난해 12월 제주 모슬포에서 열린 방어 축제에는 동해에서 잡은 방어를 보내는 일도 있었다.

방어는 동해 3대 수산물 ‘붉은대게, 오징어, 명태’까지 바꿔놨다. 지금은 방어가 명태의 자리를 차지했다. 오징어도 어획량이 급감해 탈락할 위기에 놓였다.
따뜻한 겨울·수상한 바다…魚라, 물고기 지도가 다 바뀌었네!
“올해는 곰치를 볼 수가 없네”

겨울 별미로 동해와 남해 일대에서 많이 잡히는 한대성 어종인 물메기(물곰 또는 곰치로도 불림) 어획량도 3년 새 5분의 1로 줄었다. 거제 6개 수협 위판장에서 물메기는 2017년 12만7716㎏이 팔렸지만 지난해 2만6722㎏으로 급감했다. 현지에서는 가격이 급등해 “곰치가 ‘금(金)치’가 됐다”는 말도 나온다. 물메기는 겨울철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왔다가 잡히는데 수온 영향으로 회귀 시점이 늦춰져 어획량이 급감했다는 분석이다. 강원 지역에서 수십 년간 곰치국만 전문으로 팔아온 속초 일대 상인들은 울상이다. 올해는 생물 물메기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식당 관계자는 “올겨울엔 재료가 떨어져 점심 장사만 겨우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뀌는 어업지도

바닷물의 온도 변화가 미치는 영향은 이뿐이 아니다. 오징어와 대구는 동해안에서 어획량이 줄고 있다. 명태는 씨가 말랐다. 오징어는 서해에서 더 많이 잡힌다. 서해에는 오징어와 대구 어장까지 따로 형성됐다. 겨울 평균 수온이 서해가 동해보다 5도가량 낮아 냉대성 어종들이 대거 동해에서 서해로 겨울 서식지를 옮겼다는 분석이다.

서해안 연안선망 멸치잡이 어선들의 조업 시기와 장소도 바뀌고 있다. 보통 7월 초 출항하던 멸치잡이 배들은 2~3년 전부터 6월 중순께로 날짜를 당겼다. 연안 바닷물이 따뜻해 산란 시기가 앞당겨진 멸치를 잡기 위해 출항 시기를 당겼다는 얘기다.

꽃게를 잡는 어부들도 수온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꽃게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알과 살이 차오른다. 수온이 올라 작년 어획량은 2017년의 30~40%에 그쳤고, 그나마 잡힌 것도 살이 거의 차지 않아 제값을 못 받았다.

어장 변화에 대한 대책 마련을

올겨울 바닷물은 유난히 따뜻했다. 통상 수온 1도 변화는 육상의 기온 5도 이상 변화와 맞먹는 것으로 본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국 연안 수온은 평균 9.1~18.9도였다. 강릉, 포항, 부산의 월평균 연안 수온은 15~15.8도로 평년에 비해 최고 2.2도 높았다. 남해 연안과 통영, 여수, 제주도 평년에 비해 1.3~1.8도 높은 고온 현상을 보였다. 서해안도 마찬가지다.

고우진 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장은 “1월 연안 수온도 평년보다 1도 내외로 높게 유지될 것”이라며 “주문진 등 동해안 일부는 최대 2.5도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어장 변화 대처방안과 새로운 어업 지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휴어기’와 ‘금어기’ 등 의미 없는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매달 더 세분화된 어종 관리 지침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성·속초=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