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왼쪽)이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그룹 운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서울=연합뉴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왼쪽)이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그룹 운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서울=연합뉴스)
한진그룹 '남매의 난'이 가족의 난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어머니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정석기업 고문)의 집을 찾았다가 다툼을 벌이면서 이 전 이사장이 상처를 입는 일까지 발생했다. 가족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져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8일 업계 등에 따르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성탄절인 지난 25일 서울 평창동에 있는 어머니 이 전 이사장의 자택을 찾았다가 경영권 문제로 언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조 회장과 이 전 이사장은 서로 격분해 언성을 높였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조 회장이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과정에서 근처에 있던 화병이 깨졌고, 이 전 이사장이 팔에 상처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 회장과 이 전 이사장 간의 다툼은 지난 23일 조 회장의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조 회장을 겨냥한 입장문을 내면서 비롯됐다. 당시 조 전 부사장은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원을 통해 "조원태 대표이사가 (선친의) 공동경영 유훈과 다르게 한진그룹을 운영해 왔고, 지금도 가족 간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선제공격에 나섰다.

조 회장은 남매간 경영권 다툼에 '캐스팅보트'를 쥔 이 전 이사장이 조 전 부사장의 '반기'를 묵인해 준 게 아니냐는 일부 언론 보도를 언급하며 불만을 제기했다는 후문이다. 이 전 이사장은 자택에서 아들인 조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의 편을 들지 않고 "가족들과 잘 협력해 (그룹을) 사이좋게 이끌어 나가라"는 고(故) 조양호 회장의 유훈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는 조 회장의 여동생 조현민 한진칼 전무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조 전 부사장의 공격으로 불거진 한진가 남매의 난에 온 가족이 말려드는 모양새가 됐다. 조양호 회장이 남긴 그룹 지주회사 한진칼의 지분을 법정비율대로 유족들이 상속받음에 따라 현재 한진칼 지분은 조원태 회장 6.52%, 조 전 부사장 6.49%, 조 전무 6.47%, 이 전 이사장 5.31% 등으로 쪼개져 있다. 삼남매간 지분율 차이가 크지 않아 이 전 이사장이 조 전 부사장 편에 서게 되면 조 회장의 입지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조 회장의 한진칼 사내이사 임기가 내년 3월 끝나는 만큼 내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가족 간 분쟁이 공식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단일주주로선 최대주주에 올라있는 KCGI(강성부 펀드·한진칼 지분율 17.29%)와 이 전 이사장, 조 전 부사장이 연대하면 조 회장이 경영권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조 전 부사장 측은 입장을 내기 전 가족과 협의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최근 조 전 부사장과 이 전 이사장이 외국인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혐의 등으로 함께 재판을 받으며 사이가 돈독해졌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한진그룹 측은 이날 "집안에서 소동이 있었던 것은 맞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정확한 사실 관계는 총수 일가의 개인적인 일이라 확인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