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 위에 실리…삼성·LG의 '프레너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오랜 맞수다. 40여 년간 국내외 휴대폰과 가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지금도 TV 화질과 표준을 두고 기싸움을 펼치고 있다.

숙적 관계인 탓에 서로 부품을 교환해 사용하지 않았다. 두 회사 모두 각각의 계열사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런 ‘내 식구 챙기기’ 관행이 변했다. “품질이 우선”이라며 삼성전자는 잇따라 최신 스마트폰에 LG 배터리를 쓰고 있다. LG전자는 삼성 이미지센서를 휴대폰에 넣고 있다. TV와 반도체로도 삼성과 LG의 협력 범위는 확대되는 추세다. 경쟁 일변도였던 삼성과 LG의 관계가 프레너미(frenemy:친구와 적의 합성어)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 갤럭시S11에 LG 배터리

25일 업계에 따르면 내년에 나오는 삼성전자 갤럭시S11 스마트폰에 LG화학 배터리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은 최고급 모델인 갤럭시S11 플러스용으로 삼성전자에 배터리를 납품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8월에 나온 삼성 갤럭시노트10에 이어 삼성 최고급 스마트폰 중 두 번째다.

삼성전자와 LG화학 모두 “부품과 고객 정보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두 회사는 배터리 용량을 포함한 구체적인 납품 정보까지 교환한 것으로 파악됐다. 양사는 올해 갤럭시노트10 배터리 납품 때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지만, 제품이 출시된 뒤에는 협력 관계를 인정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갤럭시A와 M 같은 일부 중저가폰에 LG화학 배터리를 납품받았다. 갤럭시S와 노트 같은 프리미엄 제품에는 LG 배터리를 넣지 않았다. 그러다 LG 배터리 품질이 좋아지면서 삼성SDI와 함께 LG 배터리를 폭넓게 사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경쟁사 부품을 쓰는 건 LG도 마찬가지다. LG전자는 10월 내놓은 V50S 스마트폰에 삼성전자의 이미지센서를 탑재했다. 소니의 이미지센서만 사용하다 처음으로 삼성전자가 개발한 3200만 화소 제품을 장착한 것이다. LG그룹이 2014년 인수한 실리콘웍스도 삼성전자와 협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반도체 설계 업체인 이 회사는 그동안 SK하이닉스와 DB하이텍 등에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을 맡겨왔는데, 앞으로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와도 거래를 시작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악화된 한·일 관계도 영향”

삼성과 LG가 협력 범위를 넓히는 것은 품질 우선 주의 때문이다. 빠르게 변하는 정보기술(IT) 세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철저히 부품의 성능을 따져야 한다는 얘기다.

위험을 줄이려는 심리도 삼성과 LG가 손잡는 요인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2016년 배터리 결함으로 갤럭시노트7 발화사고를 겪었다. 당시 그룹 계열사인 삼성SDI와 중국 ATL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았다. 이후 갤럭시노트9 출시 때부터 품질을 지키기 위해 중국 ATL 제품은 배제했다. 대신 일본 무라타 등 다른 업체로 거래 범위를 넓혔다. 그러다 올 하반기에 나온 갤럭시노트10부터 무라타 대신 LG화학 배터리 물량을 늘려 왔다. 한·일 관계 악화로 소재·부품의 국산화 바람이 확산된 게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삼성전자가 LG디스플레이로부터 TV용 패널을 납품받다 최근엔 다른 부품이나 반도체로 협업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며 “삼성과 LG의 거래 관계는 더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인설/김보형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