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크플레이트 업체 덕신하우징은 2004년 초 회사 워크숍을 강원도 한 스키장에서 열었다. 데크플레이트는 건설 현장에서 쓰이는 거푸집 대체 건축자재다. 김명환 덕신하우징 회장(68)은 당시 직원들에게 “실패는 오너가 책임진다.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당부했다. 이 같은 내용은 빛바랜 일기장에 고스란히 적혀 있다.

김 회장은 늘 배수진을 치고 살아왔다. 맨손으로 시작한 회사를 ‘독기’와 ‘근성’으로 키웠다. 신용과 품질을 앞세워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삼아온 것은 그의 기본 경영철학이다. 작은 철강재 유통회사를 연매출 1400억원대 강소기업으로 키운 동력이다. 창업 1세대의 고민인 가업승계에 대해서는 “회사를 잘 아는 사람이 이끌어야 한다”며 사원주주회사 전환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직원과 행복한 동행’을 이어가겠다는 취지다.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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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습관과 타고난 근성으로 회사 성장시켜

김 회장은 50년 넘게 일기를 써왔다. 충남 홍성의 농촌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가 일기를 처음 쓴 건 16세 때였다. 참외·수박서리를 하는 등 사춘기 시절 자신의 잘못도 꼼꼼히 기록했다. 2년 뒤 철이 들고 잘한 일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 뒤 일기는 중요한 메모이자 스스로를 다독이는 매개체가 됐다. 1980년 사업을 시작하고부터는 공장 증축 방향, 투자계획 등 업무에 대한 내용을 적어 내려가면서 경영지침서로 변했다.

자수성가한 사업가라면 누구나 ‘근성’과 ‘독기’의 삶을 살아왔다. 김 회장은 독기를 품고 밑바닥부터 맨손으로 회사를 일궈낸 기업가다. 1970년대 철강재 유통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할 때 월급을 아끼기 위해 점심을 굶었다. 월급쟁이 생활을 빨리 청산하고 회사를 차리고 싶었다.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굶기를 밥 먹듯 한 것이다. 26세이던 1977년 영업을 나갔다가 서울 구로동 길거리에서 쓰러졌다. 영양실조로 인한 결핵에 걸렸던 것. 이후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한쪽 폐가 기능을 상실했다. 김 회장은 “기업을 하기로 결심했으면 죽기 살기로 독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깐깐한 품질관리로 승부

김 회장은 품질 완벽주의자다. 그의 경영 철학은 ‘신용과 품질이 생명’이란 말로 요약된다. 서울 신월동 사옥 내 회장 접견실 한쪽 벽에는 ‘까다로운 고객이 명품을 만든다’는 문구가 씌어 있다. 이 문구는 직원들의 명함에도 적혀 있을 정도로 김 회장은 ‘까다로운 고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데크플레이트 생산 초기 운반, 시공 등 여러 요인으로 품질에 문제가 생겼다. 데크플레이트는 강판과 철근을 일체화해 거푸집과 인장재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건축자재다. 김 회장은 “원인이야 어찌 됐든 허물고 처음부터 목숨을 걸고 다시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후 그 고객(전문건설회사)은 덕신하우징의 최고 고객이 됐다. 당시 고객은 김 회장의 깐깐한 품질관리를 주변에 소문냈다. 데크플레이트 시장 후발주자였던 덕신하우징은 신용과 품질 덕분에 2006년부터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완벽주의 덕분에 한번 저지른 잘못이 재발되지 않고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시스템과 매뉴얼을 마련했다.

김 회장은 경쟁이 치열해진 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 쪽으로 눈을 돌렸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는 물론 폴란드 등 유럽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다.

“납기, 공기, 신용, 친절이 생명”

김 회장이 생각하는 품질은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납기, 공기, 신용, 친절’이 그것이다. 건설회사인 고객들이 원하는 납기와 공기를 맞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소 건축자재 업체는 창업주가 사실상 최고의 영업맨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15년 전 영업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품질이 충분히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영업을 최고경영자(CEO)에게 믿고 맡겼다”며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대형 건설사가 제품을 쓰는 것은 인간관계가 아니라 제품의 품질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영업을 총괄하던 오너가 물러나면 실적이 뒷걸음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덕신하우징은 그런 단절이 없었다.

신용도 김 회장이 50년간 지켜온 덕목이다. 김 회장은 “신용은 성공의 어머니이자 무형의 자산”이라며 “회사의 브랜드는 신용을 토대로 형성된다”고 강조했다. 창업 초기 철강재를 팔던 그는 “못 배웠고 돈 없이 장사하지만 약속은 꼭 지키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성실하게 물건을 파는 청년을 믿고 고객은 어음 대신 현금으로 거래했다. 직원들이 고객과 신뢰를 형성할 때 고객과의 관계가 지속된다는 게 김 회장의 지론이다.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덕신하우징은 품질본부팀과 기업부설연구소를 업계에서 유일하게 운영하고 있다. 김 회장은 “소비자 눈높이를 계속 따라가지 않으면 도태된다”며 “매년 8억원가량 투입하며 연구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등 선진국에 수출하기 위해 제품 인증작업도 착실히 하고 있다.

“직원에게 회사 맡기면 100년 갈 것”

40년간 회사를 이끌어왔던 김 회장은 2014년 회사를 코스닥시장에 상장시켰다. 이렇게 키운 회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게 대부분 경영자의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김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자식들에게 상속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두 딸에게 회사를 넘겨주기보다 “지금까지 키워온 직원들에게 맡기면 회사가 100년은 더 갈 것”이란 확신에서다. 앞으로 300여 명의 직원이 회사를 소유하는 사원주주회사로 만들 계획이다.

그 첫 번째가 재단 설립이다. 4년여 준비작업 끝에 올해 자신의 호를 딴 ‘무봉 장학재단’을 세웠다. 네 번 반려됐다가 올해에서야 인가를 받았다. 무봉(楙奉)은 ‘작은 나무를 무성하게 키우는 것’처럼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김 회장은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무봉 장학재단으로 넘기고 경영일선에서 손을 떼려고 한다”고 했다.

■ 김명환 덕신하우징 회장 프로필

△1951년 충남 홍성 출생
△1980년 덕신상사 대표
△1991년 덕신철강공업 대표
△2010년 덕신하우징 회장
△2011년 덕신그룹 회장
△2019년 무봉장학재단 이사장


서기열/김진수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