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지자체·기업·주민 소통
28社 옮겨와 일자리 2200개
인천 경서동 경인주물단지에 입주해 있는 한 중소기업의 선박용 엔진실린더 생산 현장. 직원이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녹인 쇳물을 거푸집에 붓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인천 경서동 경인주물단지에 입주해 있는 한 중소기업의 선박용 엔진실린더 생산 현장. 직원이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녹인 쇳물을 거푸집에 붓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상생’과 ‘갈등’. 둘 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기업과 지역 주민들의 운명이 극단적으로 갈렸다. 한쪽에는 3500억원 투자에 2200개 일자리가 생기고, 다른 쪽에선 긴 소송전 끝에 기업과 주민 모두 큰 손실을 봤다. 주물기업 유치를 추진하던 경남 밀양과 충남 예산의 이야기다.

두 지역은 2009년 동시에 주물산업단지 조성에 나섰다. 인천 경인주물단지 기업들은 예산을, 경남 진해 마천주물공단 기업들은 밀양을 이전 대상지로 정하면서다. 10년이 지나고 나란히 신규 산업단지 조성공사까지 마쳤지만 결과는 엇갈렸다.

주물단지 유치 시작은 같았지만…밀양 vs 예산, 엇갈린 '일자리 운명'

100만㎡로 조성된 밀양 하남산업단지에는 2024년까지 28개 주물 관련 기업이 이전한다. 기존 일자리 1700개가 그대로 옮겨오고 500개는 새로 생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주물, 금형 등 뿌리기업이 단체로 이전하는 국내 첫 사례”라며 “주민들과 끊임없는 소통으로 ‘주물은 환경에 유해하다’는 고정관념을 허문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이 거둔 결실”이라고 말했다.

밀양에 이전하는 주물기업들은 투자의 34%까지 보조하는 정부 ‘상생형 일자리’ 사업의 첫 수혜 대상이 될 전망이다. 중소기업이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자체와 주민은 이를 지지·성원하는 ‘밀양형 일자리’로 지난 6월 지정됐다.

예산으로 이전하는 기업은 애초 23개에서 1개로 줄었다. 주민 반대 탓이다. 산업단지 지정 취소를 놓고 대법원까지 이어진 5년간의 소송전을 치르는 동안 기업들이 하나둘 이전을 포기했다. 기업들은 각각 3억~6억원의 계약금을 포기했다. 시행사에 냈다가 돌려받은 중도금 등 각종 비용까지 고려하면 기업들의 전체 손실은 100억원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근 주민 600여 명은 가구당 150만~200만원을 소송과 시위 등을 위한 ‘투쟁 기금’으로 내야 했다. 당시 마을 이장이던 김영범 씨는 “소송까지 지면서 주민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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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양대 주물산업단지인 인천 경인주물단지와 경남 진해 마천주물공단은 설비 노후화로 2009년 나란히 이전을 추진하게 됐다. 당초 4~5년이면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했던 작업은 예상치 못한 장애에 부닥쳤다. 주민의 조직적인 반대운동이었다. 경남 밀양의 반대도 처음엔 충남 예산 못지않았다. 하지만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이 결과를 갈랐다.

주물기업 탐방부터 갈려

주물은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금속을 녹여 틀 안에 넣은 뒤 응고시켜 원하는 모양의 금속제품을 제조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화학물질이 사용돼 악취가 난다. 거푸집의 재료인 유연탄에서는 분진이 발생한다. 밀양과 예산 주민이 처음부터 반대한 이유다.

기업들의 대응은 초기부터 갈렸다. 마천주물공단 기업들은 밀양 주민 대표 14명의 일본 나가노 주물공장 탐방을 주선했다. 최신설비를 적용하면 악취와 분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탐방 후 주민들은 “나가노 공장 내부의 공기가 외부와 똑같이 깨끗하다. 냄새나 뿌연 연기가 없다”며 편견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예산 주민도 주물기업 탐방에 나섰다. 기업들이 아니라 반대위원회 주도로 인천과 경북 영양 등지의 노후 주물기업을 돌아본 것이다. “먼지가 날려 작물을 키우기 쉽지 않다”는 주민 반응을 들으며 반대 뜻은 더 굳어졌다. 이는 주민들이 자기 주머니를 털어 2011년부터 충청남도를 상대로 공단 지정 취소 소송에 나서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법원까지 가는 5년간의 소송 과정에서 공단 조성 공사가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주물단지 유치 시작은 같았지만…밀양 vs 예산, 엇갈린 '일자리 운명'

주물기업 이전 과정에서 환경 영향을 평가할 환경보존위원회 구성을 놓고도 결과가 엇갈렸다. 예산에서는 기업과 주민 대표를 각각 몇 명 정할지를 놓고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밀양 이전 주물기업들은 아울러 17억원을 투자해 조성된 공단 내에 환경측정장치를 네 군데 설치했다. 공단 조성 작업을 책임진 밀양하남공단사업협동조합의 조민석 이사는 “법적으로는 하나면 충분하지만 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의 유치 의지도 영향

밀양 주민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세운 건 기업들의 일자리 약속이었다. 500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지난 6월 밀양시 및 주민과 ‘밀양형 일자리 협약’을 맺었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에 밀양 주민을 우선 채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주물업체 3년 숙련공의 월급은 400만원 이상이다. 연봉 5000만원이 넘는다. 주민들은 객지에서 고생하는 자녀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길이 열렸다며 기뻐했다. 올해 초부터 이전 공사를 하고 있는 한황산업의 장희중 이사는 “설비 증설이 내년까지 마무리되면 80명을 새로 고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옮겨오는 일자리 1700여 개를 더하면 2200개 이상의 일자리가 밀양에 유입된다. 인구가 10만5900명까지 줄어 시(市)규모 유지(인구 10만 명)에 사활을 걸고 있는 밀양에 단비와 같다.

밀양시와 경상남도도 체계적인 지원책을 내놨다. 올해 2월 정부가 기업 투자비의 최대 34%까지 지원하는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을 내놓자 주물기업들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기업들이 “불경기로 진해의 기존 공장부지가 팔리지 않아 이전 자금 마련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자 도예산으로 장기 저리대출을 해줬다. 이재강 밀양시 투자유치과 주무관은 “환경 등과 관련해 각종 규제·감독만 받던 주물기업들은 정부에서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믿기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반면 예산에서는 지자체가 제 역할을 못했다. 기업들은 “이전 양해각서를 체결할 당시 도지사이던 이완구 전 총리가 떠나자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주민들도 “충청남도와 예산군의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이전까지의 논의는 사라지고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가구당 150만~200만원의 ‘투쟁기금’을 냈지만 시위 과정에서 일부 주민은 형사처벌을 받고, 공단 지정 취소 소송에서는 1, 2, 3심 모두 패하면서 상처만 남았다.

밀양·예산=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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