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수익을 내지 못하는 퇴직연금에 대해선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퇴직연금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파격’이다. 은행권을 중심으로 퇴직연금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수수료를 줄이고, 다른 금융회사와의 협업 체계를 강화하는 곳도 늘고 있다. 고객으로선 나쁠 게 없다. 퇴직연금 수수료 부담이 줄고, 선택의 폭은 넓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수익 안나면 수수료 0"…은행, 퇴직연금 승부수
우리銀 “수수료 시스템 대폭 개편”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올 4분기 퇴직연금 수수료 시스템을 대폭 개편할 계획이다. 퇴직연금에 수익이 나지 않으면 수수료를 받지 않는 방안이 핵심이다. 사회초년생과 사회적 기업 근로자에게는 이달부터 손실 여부와 관계없이 수수료를 감면해주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7월 퇴직연금 자산관리센터를 신설하고 이 같은 개편안을 추진해왔다.

우리은행 고위 관계자는 “은행 퇴직연금은 수익률이 낮고 관리를 덜 한다는 소비자의 인식을 타파하기 위해 수수료를 크게 낮추는 방향으로 사업을 정비하고 있다”며 “회사가 아니라 가입자 개인이 운용을 책임지는 확정기여형(DC) 연금이 늘어나는 만큼 은행도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퇴직연금 고객군을 △만기 도래 상품 보유 고객 △저금리 상품 보유 고객 △손실이 난 고객으로 나눠 1 대 1 상담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다른 은행 및 은행 계열 금융그룹도 올 들어 앞다퉈 퇴직연금 수수료를 낮추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6월 개인형 퇴직연금(IRP) 수수료를 최대 70% 인하하는 등 퇴직연금 수수료 체계를 전면 개편했다. 가입자 계좌에 수익이 나지 않으면 1년 단위로 해당연도 운영·자산관리 수수료를 면제해준다.

하나금융도 같은 달 사회초년생(만 19~34세)에게 수수료를 70% 감면해주는 방안을 발표했다. 만 55세 이후 연금으로 수령하면 수수료는 최대 80%까지 줄어든다. 농협은행은 7월부터 사회적 기업 근로자의 수수료를 깎아주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상품 특성상 입사 후 퇴직할 때까지 최소 20년 이상 위탁 운용되기 때문에 수수료의 존재감이 크다”고 설명했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병행한다. 기업은행은 보험사와 손을 잡았다. 올 4월과 8월 각각 삼성화재, 한화생명과 업무협약을 맺고 퇴직연금 사업 체계를 강화했다. 보험사가 취급하는 ‘이율보증형’ 상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상품은 기존 정기예금보다 금리가 높고 원리금도 보장된다.

퇴직연금 경쟁 ‘춘추전국시대’

은행들이 앞다퉈 퇴직연금 혜택을 늘리는 것은 치열해지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다. 퇴직연금 시장은 고령화와 인구 구조 변화에 따라 계속 커지는 추세다.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190조원으로 2017년(168조4000억원)보다 12.8% 증가했다. 이 중 은행권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100조원을 웃돈다. 그러나 수익률은 ‘덩치’에 못 미친다. 2분기 말 기준 은행 퇴직연금의 평균 수익률은 연 1.48% 수준이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1.5%)보다도 낮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과거처럼 보수적으로만 퇴직연금을 운용하다가는 고객 기반을 빼앗길 수 있다”며 “경쟁적으로 혜택을 더 내놓는 은행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소람/정지은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