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이재용, 대법원 선고로 다시 재판 (사진=연합뉴스)
박근혜·최순실·이재용, 대법원 선고로 다시 재판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는 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파기환송 판결 이후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법원은 이날 '국정농단' 사건 핵심 인물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2심 재판을 전부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박 전 대통령은 뇌물 혐의와 다른 공소사실을 합쳐 형량을 선고한 것이 위법하다는 법리적 이유에서, 이 부회장은 최씨 측에 건넨 뇌물액과 횡령액이 2심 때보다 더 늘어나야 한다는 이유 등에서 2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이들의 형량은 다시 열리는 2심(파기환송심) 재판을 통해 결정된다. 이 부회장의 경우, 기존 2심 때보다 인정된 범죄혐의가 늘어났기 때문에 형량이 더 무거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이날 대법원 판결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뇌물 혐의에 대한 분리 선고가 이뤄질 경우 형량이 더 무거워질 가능성이 있다.

대법원은 이날 삼성이 제공한 뇌물액 규모와 관련해 이재용 부회장의 2심 판결 중 무죄로 봤던 부분을 추가로 뇌물로 인정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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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최씨 측에 제공한 말 3필과 관련해 말 구입액이 아닌 말 사용료 부분만 뇌물로 인정된다고 본 2심과 달리 말 구입액 34억원을 뇌물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부회장 등은 살시도 구입 과정에서 말 소유권이 삼성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국제승마연맹에서 발급한 말 패스포트 마주(馬主) 란에 삼성전자를 기재했다"며 "이후 확실히 하기 위해 최씨에게 위탁관리계약서 작성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때 최씨는 '윗선에서 삼성이 말 사주기로 했는데 왜 삼성명의로 했냐'며 화를 냈다"며 "최씨가 이런 태도를 보인 건 말 소유권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삼성은 '기본적으로 원하는 대로 하겠다'는 문자를 보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단독면담에서 이 부회장에게 '승마 유망주에게 좋은 말 사줘라'라고 했다"며 "삼성으로선 최씨가 말 소유권을 취득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알았다고 봐야 한다"고 인정했다.

또 "실질적 말 처분 권한은 최씨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했고, 의사 합치가 있었다"며 "이후 비타나, 라우싱 매수 때도 살시도와 같이 삼성 내부 기안문에 패스포트와 소유주 부분을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이 최씨에게 제공한 말은 뇌물이라고 봐야 한다"며 "이와 달리 (말 관련) 뇌물은 액수미상의 사용이익에 불과하다고 본 건 논리와 경험칙에 반하고 일반상식에도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국정농단' 사건 핵심 인물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2심 재판을 전부 다시 하라고 결정한 29일 경기도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대법원이 '국정농단' 사건 핵심 인물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2심 재판을 전부 다시 하라고 결정한 29일 경기도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아울러 대법원은 이 부회장의 2심 판결에서 뇌물로 인정되지 않았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뇌물 혐의액 16억원도 뇌물액으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이 부회장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된 것은 앞서 2심에서 뇌물로 인정되지 않았던 말 3마리 34억원이 뇌물로 인정되면서 총 뇌물액수가 50억 원을 넘어가게 된 점이다. 뇌물이 50원을 넘을 경우엔 5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횡령액을 모두 변제한 점,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점,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뇌물 70억을 건네 유죄를 받은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집행유예를 받은 점 등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양형사유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뇌물액이 50억을 넘긴다 해도 집행유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란 뜻이다.

통상 대법원에서 사건이 파기환송될 경우 6개월~1년내에 확정판결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사안에 따라 더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이 부회장은 여러 대내외적인 악재 속에서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미래를 향한 투자 행보에 고삐를 죄고 있었으나 이번 판결로 재구속의 '공포'에 놓이게 됐다.

지난해 2월초 항소심 집행유예로 구치소에서 풀려난 이후 약 1년 6개월간 최악의 대내외 악재 속에서 적극적인 경영 행보를 이어갔으나 다시 재판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다만 글로벌 반도체·스마트폰 업황 부진, 미중 무역전쟁, 일본 수출 규제 등 당장 직면한 현안이 워낙 많아 최근 이어가고 있는 '현장 경영' 행보는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복수의 삼성 관계자는 이날 "대법원 판결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불확실성 요인이 추가됐다"면서 "거취에 변화는 없으나 재판 준비 때문에 경영 행보에 차질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재계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 한국 제외 조치가 발효된 직후여서 반도체 업황 악화와 함께 한·일 경제 갈등까지 악재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자칫 ‘리더십 공백’이라도 야기되면 삼성 경영권은 물론 미래 신산업 추진작업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사업지원TF’ 등 관련 팀을 중심으로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이 부회장은 경제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현장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대법원의 판결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일본 수출규제 강화와 미중 무역전쟁 등 여러 가지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이번 판결로 경제계의 불확실성이 지속됨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