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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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확대하고 자산을 매각해 현금을 쌓고 있다.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자 선제적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회사채 찍고, 자산 팔고…불안한 기업들 "현금 쌓자"
한국은행이 13일 발표한 ‘2019년 7월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기업들의 회사채 순발행액(발행액-상환액)은 지난 5월 5000억원, 6월 2조4000억원, 7월 3조3800억원 등으로 급증하고 있다. 기업들이 지난달 회사채 시장에서 조달한 자금 규모는 2012년 7월(3조4000억원) 후 7년 만의 최대다. 자산 매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유형자산 처분을 공시한 기업은 롯데쇼핑 현대엘리베이터 한진중공업 흥아해운 등 68곳이었다. 전년 동기(40곳) 대비 70% 늘었다. 기업들은 유동성을 확보하는 한편 설비투자 등 현금 유출은 억제하고 있다. 올해 2분기 설비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7.8% 감소했다.

기업들이 현금을 쌓는 것은 글로벌 경기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미·중 무역분쟁 격화 등 대내외 리스크를 대비하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기업들의 경기 인식은 최악 수준으로 얼어붙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8월 전망치)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이후 가장 나빴다.
회사채 찍고, 자산 팔고…불안한 기업들 "현금 쌓자"
장기불황·불확실성 '2중 리스크'…기업들 '현금 확보' 속도낸다

롯데쇼핑은 지난 1월 회사채 4000억원어치를 발행한 데 이어 이달에도 2000억원어치를 추가로 찍기로 했다. 이 회사는 이달 초 롯데백화점 구리점, 광주점 등 점포 9개를 묶어 재무적 투자자에 1조629억원에 매각했다. 유통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자 롯데쇼핑은 현금 확보에 총력을 쏟고 있다. 올 들어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기가 빠르게 하강하자 롯데쇼핑을 비롯한 기업들의 현금 확보 움직임이 한층 빨라지고 있다.

회사채 발행 급증

기업의 자금조달은 최근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회사채 순발행액(발행액-상환액)은 12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순발행액(6조4269억원)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일반 회사채 발행액은 25조771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1% 증가했다. 반기 기준 사상 최대 규모다.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잔액은 지난 6월 말(503조610억원) 처음으로 500조원을 넘어섰다.

기업들은 불황에 대비하려던 차에 금리가 큰 폭으로 떨어지자 저렴하게 중장기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채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지난해 말 연 2.28%였던 3년 만기 ‘AA-’ 등급 회사채 평균금리는 이날 연 1.67%까지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가능성이 제기된 데다 하반기 성장률 둔화 등 비관적인 경기전망이 이어지면서 채권금리도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6월부터 롯데제과 예스코홀딩스 SK종합화학 등이 줄줄이 기준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기업이 기준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한 것은 2014년 10월 LG디스플레이 이후 4년8개월 만이다. 안전자산 선호심리로 우량 회사채 수요가 늘면서 발행금리가 연거푸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 상반기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사전 청약)에 들어온 기관투자가 자금은 총 90조783억원으로 반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업들 덮친 불확실성

기업의 자산 매각도 눈에 띄게 늘었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유형자산 처분을 공시한 기업은 68곳으로, 작년 같은 기간(40곳)에 비해 70%(28곳) 늘었다. 한진중공업은 이달 말 인천 원창동 부동산을 재무적 투자자에 1314억원에 매각한다. 화장품업체 토니모리는 지난달 천안 물류센터를 250억원에 펀드에 팔았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경기 이천 본사와 공장, 기숙사를 묶어 2050억원에 매각할 계획이라고 지난 5월 공시했다. 풍산특수금속도 인천 효성동 공장 부지를 1595억원에 처분한다고 4월 공시했다.

기업들이 현금 마련에 분주한 것은 대내외 경기가 빠르게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수출규제와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실물경제는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17억7000만달러로, 반기 기준으로는 유럽발 재정위기 영향을 받던 2012년 상반기(96억5000만달러) 후 7년 만에 가장 적었다. 환율을 비롯한 경영 변수 예측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 격화로 원화가치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6.0원 오른 1222원20전에 마감했다. 2016년 3월 2일(1227원50전) 이후 3년5개월 만의 최고치다. 기업 체감경기는 10년 만에 가장 나빠졌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달 매출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집계한 8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80.7로 2009년 3월(76.1) 이후 가장 낮았다.

기업도 이 같은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를 공식적으로 토로했다. 반도체 업체인 피에스엠씨는 지난달 27일 공시를 통해 “일본의 경제보복이 국내 반도체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탓에 하반기 반도체 경기 회복도 불투명하다”며 “일본의 수출규제 등으로 금융시장 환경이 급변할 경우 환차손이 발생해 회사 수익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익환/김진성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