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발산업에서 부산을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부산은 신발의 도시다. 1980년대 초반까지 부산 지역 신발산업의 고용인구는 5만 명이 넘었다. 국제상사 등 종업원이 1만 명 이상인 신발회사도 4곳 있었다. 1980년대 말까지 한국 수출 품목 중 신발이 상위 5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 지금도 전국 신발 제조업체 493곳 중 절반가량인 230곳이 부산에 있다.

부산, 신발 '메카'로 재부상한다
왜 부산이었을까. 1950년 6·25전쟁은 부산을 국내 신발산업의 중심지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피란민들이 임시수도인 부산으로 몰려들며 노동집약적 성격인 신발산업이 태동했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1970년대에는 신발 주력 제품이 운동화로 바뀌었다. 일본의 운동화 제조 기술과 생산설비가 유입돼 컨베이어 시스템에 의한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 부산은 세계적인 생산기지로 거듭났다. 1980년대에는 나이키, 리복 같은 미국 브랜드와 전략적 제휴를 맺으며 승승장구했다. 1990년 부산의 신발업체가 1123개였을 만큼 호황을 누렸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신발산업은 중국 및 동남아시아와의 저가 경쟁에서 밀리며 후퇴하기 시작했다.

태광실업과 창신아이엔씨 등 일찌감치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들은 매출 1조원대 기업으로 덩치를 키웠다. 하지만 대다수 신발 제조사와 부분품 업체는 영세사업자로 전락했다. 2706개에 달하는 전국 신발 및 부분품 업체 중 81.8%(2213개사)가 10인 미만 소규모 사업체다. 20인 미만 사업체까지 포함하면 93%다. 부산에 있는 신발 제조사 및 부분품 업체 상당수는 30년 전 생산 방식을 고수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저임금에 의존하며 버티고 있다.

아디다스 연구소장 출신인 서영순 경성대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는 “글로벌 브랜드가 손대지 않는 틈새시장에서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관련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며 “부산에 남아 있는 완제품 제조업체와 부분품·소재 업체가 공급 사슬을 체계적으로 갖추면 도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