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에서 팔린 수입자동차 다섯 대 중 한 대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미국산 자동차가 많이 팔리지 않아 문제라는 일부 미국 인사들의 주장은 틀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정부가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한국산 자동차에 고율(25%) 관세를 매길 근거가 취약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미국산 車 어느새…국내 판매 5만대 넘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8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수입차 중 18.5%에 달하는 5만2539대가 미국 공장에서 생산됐다. 미국산 자동차의 국내 판매량이 5만 대를 넘은 것은 사상 처음이다. 2017년(4만8563대)과 비교하면 8.2% 증가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17억7000만달러(약 1조9312억원) 규모다.

생산지 기준으로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는 독일산이었다. 지난해 11만6795대가 팔렸다. 전체 수입차의 41.2%에 달한다. 3위와 4위는 일본(3만411대)과 영국(2만2812대)이 차지했다.

이 수치는 차량 생산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BMW(독일 브랜드) 차량과 혼다(일본 브랜드) 차량도 미국산으로 계산했다. 볼트, 이쿼녹스 등 한국GM이 제너럴모터스(GM)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차를 가져와 파는 것도 미국산에 포함됐다. 한국에서 팔린 미국산 차량 5만2539대 중 7845대는 혼다 브랜드였고, 6852대는 BMW 브랜드였다.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이 자료를 공개하면서 “미국산 자동차가 국내 수입차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미국이 자동차 수입제한 조치를 한국에 적용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한국산 자동차가 팔리는 만큼 한국에서 미국산 자동차가 팔리지 않는다’는 미국 인사들의 주장은 틀렸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지난 1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안이 발효되면서 미국산 자동차의 안전 및 환경 기준이 완화된 상태다. 자동차산업협회는 앞으로 미국산 자동차 판매량이 더 늘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17일 ‘수입자동차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백악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보고서를 받은 뒤 90일 이내 수입자동차에 25%의 고율 관세를 물릴지를 결정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고, 한국이 예외국 명단에 포함되지 않으면 한국 자동차산업은 헤어날 수 없는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미국으로 수출된 국산차는 81만 대로 전체 자동차 수출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국내 자동차 공장에서 생산한 차량(403만 대)의 20% 수준이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르노삼성 부산공장 가동률은 반토막이 나고, 한국GM과 현대·기아차도 일부 생산라인을 폐쇄해야 할 판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폭탄’이 현실화되면 수십만 개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