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를 무릎 꿇린 나라. 호주의 커피 문화는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50년대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호주에 에스프레소를 퍼뜨렸다. 1970년대 보헤미안 예술가들은 멜버른을 중심으로 그들만의 커피를, 동네 카페에서 마시기 시작했다. 호주식 커피인 플랫화이트와 롱블랙은 세계 주요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글로벌 커피 메뉴가 됐다. 카페라떼와 아메리카노와 비슷한 형태지만 맛은 전혀 다른 맛을 낸다. 이유는 싱싱한 생두에 있다. 오늘도 멜버른 항구에는 하루 300만 명이 마실 수 있는 생두가 들어온다. 도시에는 수백 개 카페와 로스터리가 각각의 개성으로 공존한다. 스페셜티 커피 문화도 10여년 전 일찌감치 시작됐다.

이런 커피강국에서 4~5년 전부터 한국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호주 국가대표 커피 챔피언은 수년 째 한국인이 차지하고 있고, 이름난 카페와 로스터리에서 한국 청년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자신의 브랜드를 창업한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멜버른과 시드니에서 한국인 바리스타와 로스터들을 인터뷰했다.

③차성원 타이거러스 에스프레소 대표 & 2015 월드라떼아트 챔피언
[호주의 커피피플] (3) 포효하는 호랑이…한국인 최초 라떼 세계 챔피언의 '제3라운드'
[호주의 커피피플] (3) 포효하는 호랑이…한국인 최초 라떼 세계 챔피언의 '제3라운드'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하던 일 다 그만 두고 훌쩍 떠나버리고 싶을 때가. 그 생각부터 실행까지 딱 2주가 걸린 남자가 있다. 2015년 호주 국가대표로 출전해 월드라떼아트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차성원 타이거러스에스프레소 대표(40)다. 호주에서 캘럽 차(Caleb Cha)로 더 잘 알려진 그는 2008년 멜버른으로 그렇게 떠나왔다. 금융회사 영업직 4년차 때다.

커피는 아예 몰랐다. 영업직이었으니 하루 하루 성과를 내는 데 급급했다. 호주를 택했던 것도 단순했다. 멜버른에 사는 친구가 자주 업데이트하는 (당시 싸이월드)사진을 보며 오랫동안 동경해왔다고 했다. 일이 지겹고 힘들던 어느 날, 그렇게 속전속결로 호주행을 결심했다. 지난 달 30일 멜버른 타이거러스 에스프레소에서 만난 차 씨는 “도망치듯 온 호주에서 완전한 나의 일을 찾았다”고 했다.

기술도 없이 도전한 호주 생활은 쉽지 않았다. 대부분 20대 초반에 떠나는 워킹홀리데이를 서른 살을 앞두고 왔으니 당연했다. 맨 처음 아르바이트는 시급 8달러로 시작했다. 몸값을 높이기 위해 윌리엄앵글리스라는 호주 최대 외식 및 호텔경영 전문학교를 들어가 ‘커피’를 배웠다. 첫 시작이었다. 수료증을 받고 필드로 나오니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고 했다. 그는 “커피 한 잔을 만드는 과정을 하나 하나 분리하면 23~24단계인데, 이를 하루 200잔에서 많을 때는 1000잔까지 수도 없이 반복해야 했다”고 말했다. 물론 시급도 당시 8달러에서 17달러로 2배 이상 올랐다. 업계에서 베테랑으로 인정받은 무렵인 2013년 당시 슬럼프가 찾아왔다. 호주에 더 있어야 할 지, 이 일을 계속해야 할 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호주의 커피피플] (3) 포효하는 호랑이…한국인 최초 라떼 세계 챔피언의 '제3라운드'
[호주의 커피피플] (3) 포효하는 호랑이…한국인 최초 라떼 세계 챔피언의 '제3라운드'
[호주의 커피피플] (3) 포효하는 호랑이…한국인 최초 라떼 세계 챔피언의 '제3라운드'
차 대표는 “슬럼프를 커피 챔피언십으로 극복했다”고 했다. 2014년 첫 도전을 했고, 별 준비 없이 2위에 올랐다. 그는 “욕심이 났다”고 했다. 별 준비 없이도 남들이 그렇게 오래 준비한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2위를 하니, 내년에도 꼭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가 생기면서 수백 잔의 커피를 만들고 마셨다. 라떼아트는 정교한 손놀림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연습을 많이 하는 것밖에는 방도가 없다.

그는 출전 두 해 만인 2015년 국가대표로 선발, 스웨덴에서 열린 월드바리스타챔피언에서 라떼아트 부문 1위를 거머쥐었다. 쟁쟁한 바리스타와 수 없이 많은 심사위원들이 나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주어진 시간 내에 커피를 만들어내는 것. 그에게 긴장같은 건 아예 모르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오히려 너무 긴장하고 무서운 순간들이 많았기 때문에, 호랑이를 마스코트로 정했다”고 했다. 호랑이를 떠올리면서 힘을 내게 됐다는 것. 슬럼프는 물론 경쟁에 대한 두려움을 떨친 뒤 그는 월드라떼 챔피언이 됐다. 호주 국가대표 자격이었다.
[호주의 커피피플] (3) 포효하는 호랑이…한국인 최초 라떼 세계 챔피언의 '제3라운드'
[호주의 커피피플] (3) 포효하는 호랑이…한국인 최초 라떼 세계 챔피언의 '제3라운드'
하루 아침에 삶이 달라졌다. 전날까지 호주의 외국인 노동자 중 1명이었다가 스타가 됐다. 인터뷰 요청도 쇄도했다. 라떼아트 부문은 커피 위에 우유를 부으며 미세한 그림을 그려내는 작업이다. 화려한 볼거리가 있으니 다른 부문 챔피언들보다 더 바쁜 게 사실이다.

“2015년 챔피언이 된 이후 최근까지도 월드 투어를 다녔습니다. 가본 나라마다 세계 지도에 표시를 하곤 했는데, 지금 보니 아프리카를 제외하곤 거의 다 핀이 꽂혀 있네요.”

긴 여행을 마친 그는 본격적으로 커피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6개월 전 멜버른 중심에 ‘타이거러스 에스프레소’를 론칭했다. 곧 2호점을 내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타이거러스 에스프레소를 5개 정도까지 만들고, 그 중 1개 점포는 바리스타 트레이닝 센터로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세계대회 챔피언 출신으로 유일하게 세계대회 심사위원 자격도 따냈다. 방송 진출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호주의 커피피플] (3) 포효하는 호랑이…한국인 최초 라떼 세계 챔피언의 '제3라운드'
[호주의 커피피플] (3) 포효하는 호랑이…한국인 최초 라떼 세계 챔피언의 '제3라운드'
[호주의 커피피플] (3) 포효하는 호랑이…한국인 최초 라떼 세계 챔피언의 '제3라운드'
“한국인들이 세계 대회에서 활약한 지가 오래 됐고, 저도 그 중 한 명이기 때문에 한국의 커피 문화가 성숙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요. 만약 커피 업계의 ‘백종원’이 필요하다면 그 역할도 해보고 싶습니다.”

멜버른=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