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생산·고용 등 경제지표가 악화하는 가운데 수출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은 작년 하반기부터 제기됐다. 전체 수출의 5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업황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서다. 반도체와 함께 ‘쌍끌이 호황’을 이끌었던 석유화학 수출이 확 꺾인 것도 올해 수출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정부는 올해 목표인 ‘수출 6000억달러’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긴급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수출 쌍끌이' 반도체·석유화학마저 휘청…경기둔화 먹구름 짙어진다
‘수출 쌍두마차’ 급정거하나

반도체는 작년 10월 단일 품목으로는 최초로 ‘수출 1000억달러’를 돌파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반도체 수출은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었다. 작년 상반기 매달 40~50%씩 증가(전년 동기 대비)했던 반도체 수출은 11월 11.6%로 뚝 떨어지더니 급기야 12월엔 -8.3%를 기록했다. 27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달 들어 10일까지 반도체 수출이 27.2% 급감한 것도 이런 추세적인 흐름이 이어진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글로벌 경쟁 심화와 단가 하락이 꼽힌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D램 반도체의 공급 초과율은 2017년 -4.2%에서 작년 말 0.5%, 낸드의 공급 초과율은 -3.0%에서 3.0%로 높아졌다. 공급 부족 현상을 빚던 두 제품 시장이 공급 초과로 바뀌었다는 의미다. 가격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2017년 말 개당 9.7달러였던 D램(DDR4 8Gb) 가격은 작년 말 6.8달러로 낮아졌다. 낸드(MLC 256Gb) 단가는 14.4달러에서 9.0달러로 60% 급락했다.

석유화학제품 수출도 주춤하고 있다. 작년 10월 일시적으로 42.2%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지만 11월 3.4%, 12월 -6.1%, 올해 1월 1~10일 -26.5%로 부진한 실적을 나타냈다. 석유화학은 작년 500억달러 수출을 기록해 반도체, 일반기계에 이은 수출 3위 품목이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지난 8일 석유화학업계 신년인사회에서 “석유화학산업이 지난 3년간의 초호황을 지나 올해 불황으로 접어들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산업연구원은 작년 12% 증가했던 석유화학 수출이 올해 0.4%로 줄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3대 신규 유망품목’으로 지정한 SSD(차세대 저장장치), MCP(복합구조칩 집적회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수출도 꺾이고 있다. SSD 수출은 작년 8월까지 증가세였으나 이후 매달 감소해 작년 12월엔 39.3% 줄었다. MCP 수출은 같은 기간 -6.6%에서 -46.7%로 악화됐고, OLED는 52.9%에서 11.3%로 둔화됐다.

연구기관들은 올해 전체 수출 증가율이 작년(5.5%)보다 낮은 3.0~3.7%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역수지도 불안하다. 2017년 952억달러를 기록했던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작년 705억달러로 줄어든 데 이어 올해엔 2014년(472억달러) 수준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도 “반도체 불확실성 지속”

기획재정부는 11일 공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월호’에서 “반도체 업황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공식 경기 진단 보고서인 그린북에서 특정 업황에 우려를 나타낸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다.

기재부는 지난달 그린북에선 “미·중 무역갈등 장기화 등에 따른 대외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다”며 경제 상황 전반에 관해서만 설명하고 특정 업종을 거론하진 않았다.

고광희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반도체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니 주요 위험 요인으로 보고 예의 주시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최근 간부들에게 “반도체 가격과 수요가 줄고 있어 전체 수출 실적이 나빠질 우려가 있다”며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는 그린북에서 “투자와 고용이 조정받고 있다”고도 했다. 일자리가 줄고 투자·생산지표가 악화되는 데 따른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전(全)산업생산은 작년 10월 전월 대비 0.8% 늘었으나 11월에는 0.7% 감소로 전환했다. 작년 11월 설비투자는 5.1% 줄었다. 지난해 연간 취업자 수 증가폭은 9만7000명으로, 2017년 31만6000명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조재길/이태훈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