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 연구개발(R&D) 부문 수장에 외국인 임원(알버트 비어만 사장)이 선임됐다. 현대차그룹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삼성그룹 출신인 지영조 전략기술본부장은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현대차그룹에 합류한 지 2년도 안 된 시점에서다. 그룹 안팎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 인사’라는 해석이 나왔다. R&D 부문의 인적 쇄신을 통해 미래차 기술을 확보하는 데 힘을 쏟겠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의 의지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R&D 수장 첫 외국인 알버트 비어만 발탁…삼성 출신 지영조 2년 만에 파격 사장 승진
비어만 사장은 30여 년간 BMW에서 고성능 ‘M’ 시리즈 차량 개발을 주도하다가 2015년 현대차그룹에 영입됐다.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인 ‘N’을 선보이고, 제네시스 G70 및 기아차 스팅어를 시장에 내놓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피터 슈라이어 현대차그룹 사장(디자인 경영 담당)에 이어 지난 1월 외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현대차그룹 사장이 됐다. 이후 1년이 안 돼 R&D본부를 총괄하는 본부장에 올랐다.

그동안 현대차그룹 R&D본부를 이끌었던 양웅철(R&D총괄)·권문식 부회장(R&D본부장)은 고문으로 물러났다. 양 부회장은 2011년부터, 권 부회장은 2014년부터 R&D본부를 총괄하는 역할을 해왔다.

수장이 두 사람인 데다 이들의 업무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다 보니 전략을 수립하거나 연구개발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잡음이 생기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두 부회장 중 한 명이 퇴진할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인사는 훨씬 파격적이었다. 그룹 관계자는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혁신적으로 연구개발을 추진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인사”라고 설명했다.

지영조 본부장의 승진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지 본부장은 맥킨지와 액센츄어 등 컨설팅회사에서 일하다 2007년부터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에서 신사업 및 인수합병(M&A) 등을 맡았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2월 전략기술본부를 신설하고 지 본부장을 영입했다. 전략기술본부는 미래 모빌리티(이동수단)와 로봇, 인공지능(AI) 같은 첨단 미래기술에 대한 전략을 짜고 투자를 결정하는 일을 한다. 정 수석부회장이 본부를 직접 챙길 정도로 그룹 내 위상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부터 싱가포르 차량공유업체인 그랩 등 미래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그룹 출신 인사를 2년도 안 돼 사장으로 승진시킨 건 기존 현대차그룹 문화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며 “전략기술본부의 입지가 더욱 탄탄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