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복 책임 대표(오른쪽 두 번째)와 직원들이 리뉴얼한 업소용 냉장고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경묵 기자
박종복 책임 대표(오른쪽 두 번째)와 직원들이 리뉴얼한 업소용 냉장고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경묵 기자
대구·경북에서는 한 해 2만여 개의 요식업체가 창업하고 1만5000여 개가 폐업한다. 사회적 기업인 책임(대표 박종복)은 냉장고 등 주방기기를 리뉴얼해 재활용함으로써 자영업자들의 창업 비용과 폐업 손실을 줄이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의 한 항공회사에서 일하다 경북 경산으로 내려온 박종복 대표는 처음에는 한 주방기물업체에서 일했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였지만 생활은 참담했다. 회사 대표는 근로자에게 4대 보험조차 들어주지 않고 급여도 노동강도에 비해 크게 낮았다.

4년간 현장경험을 쌓은 박 대표는 2015년 창업에 나섰다. 장사가 안돼 몇 달 만에 폐업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자영업에 기대는 영세상공인들이 안타까웠다. 비싼 돈을 들여 장만한 기물들을 충분히 재사용할 수 있는데도 오히려 처리비용을 들여 폐기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이런 물품만 재활용해도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의 아이디어는 주효했다. 첫 해 8000만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4억원, 올해 10억원으로 쑥쑥 성장했다. 주방기물 재사용을 통해 창업비용을 20~40%가량 절감해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고객이 늘었다.

환경 보호에 기여하는 측면도 적지 않다. 지난해 한 해 동안 폐기물 100t 이상을 줄여 335t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소시켰다는 평가다. 소나무 5만 그루를 심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고령 노동자 중심인 업계에 청년층을 유입시킨 것도 박 대표의 공이다. 대부분 주방기물업체는 3D 업종인 데다 처우도 박해 업계 경력이 많은 50~60대들이 일하고 있다. 박 대표는 주 5일 근로제와 정시 출퇴근, 연차수당, 퇴직금 등 근로기준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 함께 창업에 동참한 3명은 이사와 팀장으로 승진해 일하는 중이다. 박 대표는 사업 범위도 주방기물부터 인테리어, 간판까지 확대했다. 직원은 올해 10명으로 늘었다.

박 대표는 프랜차이즈형 협동조합을 설립해 책임의 사업모델을 전국으로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새로운 부지도 확보해 본사와 창고를 짓기로 했다. 이곳을 소상공인 창업과 관련한 모든 내용을 원스톱으로 컨설팅받을 수 있는 창업플랫폼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박 대표는 경북의 사회적 기업 대표들과 공익형 커피프랜차이즈인 ‘더3섹터카페’ 사업도 시작했다. 가맹점이 현재 10곳으로 증가했고 내년 50곳까지 늘릴 방침이다. 카페 창업 및 운영 과정에서 경북의 사회적 기업들이 생산한 제품을 사용해 비용도 절감했다. 창업자의 부담을 줄이는 대신 대형 프랜차이즈와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와 운영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박 대표는 “요식업과 카페, 프랜차이즈의 경험을 쌓아 기물, 재료공급, 인테리어, 경영기법 등 창업에 관한 원스톱지원 모델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책임은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냉장고 무상공급 등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박 대표는 “소상공인이 잘되면 지역경제의 기초가 튼튼해지고 일자리를 크게 늘릴 수 있다”며 “경북의 다양한 사회적 기업 네트워크와 함께 협업해 새로운 일자리 모델을 만들어보겠다”고 강조했다.

경산=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