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재미주의자, 한의사 가운도 벗었다…수제 맥주 +α 위해
월급쟁이 한의사로 1년을 보냈다. 수입은 안정적이었고 남들은 부러워했다. 흰 가운을 입고 환자를 맞이하는 일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이 뛰진 않았다. ‘맛있는 맥주를 더 재밌게 마실 수 없을까.’ 우연히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나누던 얘기는 3개월 뒤 창업으로 이어졌다. 세 명이 3000만~4000만원씩을 모아 1억2000만원으로 이태원 경리단길에 작은 펍을 열었다. 사장 셋, 직원 둘이었다.

이 회사는 창업 5년 만인 지난해 매출 126억원, 직원 100여 명, 직영 매장 7곳을 거느린 수제 맥주 대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됐다. 100억여원의 투자를 받아 미국 캘리포니아의 양조장을 인수했다. ‘더 부스 브루잉컴퍼니’의 김희윤 대표(31·사진) 얘기다. 김 대표는 “단지 술을 파는 게 아니라 ‘수제 맥주+α’라는 문화를 형성하고 싶었다”고 했다.

난 재미주의자, 한의사 가운도 벗었다…수제 맥주 +α 위해
더 부스의 구성원 100여 명은 모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맥주 생산, 유통, 판매, 점포 운영까지 직접 꾸려나간다. 이들의 공통점은 ‘맥주가 좋아서 모였다’는 것. ‘맥주와 관련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닮은 구석이다. 대기업과 공기업 직원, 컨설턴트, 마케팅 전문가 등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만난 덕에 독창적인 컬래버레이션이 많다. 그동안 방송사 tvN, 출판사 민음사, 요가복 브랜드 룰루레몬 등과 각종 문화 이벤트를 열었다.

모든 제품엔 스토리를 담았다. 대동강 맥주보다 맛있게 만들었다는 뜻의 간판 제품인 ‘대강 페일에일’, 인디음악가 장기하의 노래에서 착안한 ‘ㅋ IPA’, 배달의민족 치킨 소믈리에와 개발한 ‘치믈리에일’, 방송인 노홍철과 협업한 ‘긍정신 레드에일’ 등이다. 전국의 뛰어난 수제 맥주 양조장을 소개하는 수제 맥주 축제 ‘더 비어위크 서울’도 4년째 열고 있다.

더 부스는 밀레니얼 세대만의 새로운 조직문화도 만들었다. 스스로를 ‘재미주의자’라고 말하는 직원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펫프렌들리(pet friendly) 오피스 △자율 출퇴근제 △주 3회 사내 요가 클래스 등을 운영한다. 서울 마포구 본사 ‘더 부스 캠퍼스’에는 언제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맥주와 커피 바가 마련돼 있다. 월요일 오후에는 맥주를 마시며 주간 회의를 하고, 직원들은 반려동물과 함께 출퇴근한다.

취미가 사업이 되기도 한다. 자전거 마니아인 한 직원이 사내 동호회로 꾸린 ‘더 부스 라이딩 클럽(더라클)’은 일반인 가입자가 늘면서 전국 네트워크가 됐다. 자연스럽게 더 부스의 마케터 역할을 하며 ‘더라클’이라는 브랜드 굿즈(기념품) 사업으로 확장됐다. 더 부스는 올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산 프리미엄 수제 맥주로 승부를 본 뒤 아시아 시장에도 본격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2020년 매출 1000억원이라는 목표도 세웠다.

김 대표가 이 같은 꿈을 꾸는 이유는 하나다. “더 부스 구성원 모두가 더 재미있게 다닐 수 있는 회사, 한국 미국 동남아시아를 오가며 일하고 싶은 곳에서 더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회사로 키우고 싶습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