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오늘 컨디션 어떠냐”고 물었는데 “구찌(GUCCI)”라고 답하더라도 명품을 떠올리면 안 된다. 구찌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좋다’ ‘멋지다’는 의미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망할 것 같았던 이탈리아 명품 구찌. 지금은 ‘밀레니얼이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가 됐다. 지난해 구찌 전체 매출의 55%는 35세 이하 소비자의 지갑에서 나왔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44.5%, 27.4% 올랐고, 주가는 18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 올 1분기 매출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37.9% 늘었다.

명품업계는 그동안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을 반기지 않았다. 소유보다 경험, 브랜드보다 개성과 가치를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 때문이다. 구찌의 부활은 그만큼 극적으로 평가된다. 기업들이 앞다퉈 ‘구찌 배우기’에 나선 이유기도 하다.
망해가던 구찌는 어떻게 3년 만에 '명품계 아이돌'이 됐나
죽은 브랜드 되살린 밀레니얼

구찌는 2014년까지 위기였다. 5년 넘게 매년 매출이 20%씩 줄었다. 2015년 심폐소생술이 시작됐다.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온 마르코 비자리는 ‘밀레니얼’에서 답을 찾았다. 임원 회의 대신 ‘리버스 멘토링’이라는 새로운 회의부터 도입했다. 35세 이하 직원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였다. 새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피 사용 금지, ‘구찌와 함께하는 여행 앱(응용프로그램)’ 제작, 중성적 디자인 적용 등이 여기서 나온 결과물이다. 친환경, 경험, 재미와 개성 등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파격적인 시도가 이어졌다. 화려한 꽃무늬와 커다란 벌, 호랑이, 뱀 등이 구찌의 핸드백에 그려졌다. 구찌(GUCCI) 로고를 GUCCY, GUCCIFY 등으로 변형하기도 했다. 남성복에 리본과 레이스를, 여성복에 투박한 장식을 더했다. 디지털을 강화하고 온라인 한정판, DIY 코너도 선보였다. 인스타그램에 어울리도록 매장은 밝게 꾸몄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와도 협업했다. 광고 모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인플루언서를 썼다. 17세의 래퍼 릴 펌프는 온몸을 구찌 제품으로 두르고 ‘구찌 갱’이라는 노래를 불러 인기를 끌었다. 빌보드차트 3위까지 올랐다. 기존 소비자들은 “구찌가 미쳤다”며 화를 냈지만 밀레니얼은 열광했다.

명품 브랜드는 잇달아 ‘구찌 벤치마킹’에 나섰다. 발렌시아가와 생로랑은 비슷한 전략으로 올 1분기 매출이 30% 이상 증가했다. 버버리는 20년 만에 로고를 바꿨고, 루이비통은 뉴욕 출신 젊은 흑인 디자이너를 남성복 수장에 앉혔다.

100년 기업 ‘꿈틀’…소비재 지각변동

밀레니얼의 소비는 부모 세대와 다르다. 식품과 생활용품에서 그런 특성은 더욱 도드라진다. 시장조사기관 퓨리서치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건강과 유기농에 다른 어느 세대보다 관심이 많다. 하인즈 케첩보다 동네 청년이 만든 유기농 토마토케첩을 찾는 식이다. 페이스북의 ‘좋아요’는 수억원의 마케팅 예산과 맞먹는 효과를 낸다. SNS의 지지를 등에 업은 작은 브랜드들이 성장하면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의 10대 대형 소비재 브랜드 매출은 220억달러(약 24조6224억원) 감소했다. 시장 점유율도 3%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위기는 기업들을 바꿔놨다. 세계 최대 소비재 기업인 유니레버의 폴 폴먼 CEO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우리 회사에 닥쳐올 가장 큰 위협은 밀레니얼 세대와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도브, 바세린 등을 생산하는 유니레버는 지난해 20년 만에 처음으로 신제품 6개를 내놨다. 친환경 샴푸와 샤워젤 시리즈다.

작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투자도 늘고 있다. 112년 역사의 켈로그와 150년 역사의 캠벨수프는 지난해 벤처캐피털을 설립했다. 네슬레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의 지분을 인수하기도 했다. 미국 최대 육류회사인 타이슨푸드는 식물성 단백질로 육류 대체품을 생산하는 비욘드미트에, 주류기업 AB인베브는 지난 2년간 세계 각국의 수제 맥주 회사 20곳에 투자했다. 마크 슈나이더 네슬레 CEO는 최근 투자자들에게 “밀레니얼 세대는 곧 그들의 인생 그래프에서 소득이 가장 높은 구간을 지나가게 될 것”이라며 “그들의 취향과 니즈를 파악하는 게 소비재 기업의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