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의 충격이 영세 자영업자에게 집중되고 있지만 정부의 대책에서는 소외되고 있다. 2일 서울 종로 한 음식점 골목의 식당들이 초저녁인데도 손님들의 발길이 끊겨 텅 비어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의 충격이 영세 자영업자에게 집중되고 있지만 정부의 대책에서는 소외되고 있다. 2일 서울 종로 한 음식점 골목의 식당들이 초저녁인데도 손님들의 발길이 끊겨 텅 비어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최저임금 16.4%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자영업자를 위한 ‘소상공인·영세중소기업 지원대책’을 지난해 7월 발표했다.

여기에는 올 6월까지 지역별로 창·폐업률, 업종별 매출, 업체 수 등을 분석해 유망업종 및 입지를 추천하는 창업기상도를 구축하고, 소상공인 과밀지역 내 기존 사업자의 유망업종 재창업을 지원하는 방안이 담겼다. 이들 방안은 8월 현재까지도 시행되지 않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일단 6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추진이 쉽지 않아 늦어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정부가 ‘자영업자 달래기’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대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거나 오히려 자영업자 지원에 역행하는 정책이 추진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고용노동부 적폐청산위원회(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할 것을 권고하면서 자영업자들의 원성은 극에 달하는 분위기다. 자영업자 사이에서는 “도와주는 건 둘째치고 괴롭히지나 말아달라”는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있다.

◆일회용 컵 단속에 ‘먹방’ 규제도

정부가 2일부터 시행한 일회용 컵 남용 단속은 자영업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행정으로 지적받고 있다. 환경부는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등 매장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것이 적발되면 매장 면적, 위반 횟수 등에 따라 사업주에게 최소 5만원에서 최대 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자영업자들은 잠깐 앉아 있다가 가는 손님에게 일단 머그잔으로 음료를 주고, 손님이 나갈 때 다시 일회용 컵에 옮겨주는 등 번거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이재광 전국가맹점주협의회 회장은 “일방적으로 자영업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일회용품 사용 규제에 회원들이 모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살 길 열어줘도 모자랄 판에… '근로기준법 족쇄'까지 채우나"
모바일 상품권에 대한 인지세 부과 추진도 자영업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1만원을 초과하는 모바일 상품권에 금액에 따라 200~800원의 인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세법 개정안을 지난달 발표했다. 세법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모바일 상품권을 이용한 음료 제과 문구류 등 소액 선물이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모바일 상품권을 발행하는 사업자들이 인지세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계열 정보기술(IT)업체 관계자는 “모바일 상품권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을 사는 수요가 줄어 자영업자에게 타격이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모바일 상품권 시장은 지난해 1조228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먹방(먹는 장면을 보여주는 방송) 규제’ 방침도 자영업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국가 비만관리 종합대책’에서 “폭식을 조장하는 광고와 미디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소상공인연합회 홈페이지에는 “먹방은 외식업체 홍보 효과가 있는데 정부가 이를 막으려 하고 있다”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평양냉면 먹는 장면을 찍는 방송도 규제하자는 거냐” 등 반발하는 댓글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다.

◆최저임금 차등화는 안 하고…

정부가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인근 호프집에서 자영업자들을 만나 “최저임금은 상당 부분을 정부가 일자리안정자금으로 지원하지 않느냐”고 물은 대목이 대표적이다. 소상공인연합회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한 자영업자는 “일자리안정자금을 받으려면 아르바이트생이 4대 보험에 들어야 하는데 보험료를 내면서 일하려는 알바생은 거의 없다”며 “일자리안정자금은 영세 자영업자는 신청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달 초 자영업자 지원대책을 추가로 내놓기로 했지만 벌써부터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대책이 마땅치 않아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정작 자영업자들이 요구하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무시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달 열린 전원회의에서 자영업자 등 사용자위원들이 요구한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화’를 표결에 부쳐 부결시켰다. 최저임금위 사용자위원인 권순종 한국부동산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소상공인들이 내년 최저임금 추가 인상을 감내하기 어려운 만큼 5인 미만 사업장엔 최저임금을 차등화하는 게 그나마 이들의 피해를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임도원/이우상/안효주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