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있는 비채나에서 만난  조태권 광주요 회장은 “미쉐린으로 획득한 세계적인 인지도를 기반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해 한식 세계화의 두 번째 도전에 나선다”고 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있는 비채나에서 만난 조태권 광주요 회장은 “미쉐린으로 획득한 세계적인 인지도를 기반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해 한식 세계화의 두 번째 도전에 나선다”고 말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몽상가다.” “한마디로 미쳤다.” 2003년 조태권 광주요 회장은 사람들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았다. 최고급 한식당 가온을 연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식은 값싸고 푸짐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었다. 조 회장은 이런 때 한식의 고급화·세계화를 들고 나왔다.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13년 뒤인 2016년 말 광주요의 외식사업부 가온소사이어티가 운영하는 가온과 모던 한식당 비채나는 ‘미쉐린가이드 서울편’에 이름을 올렸다. 가온은 가장 높은 등급인 별 3개를, 비채나는 1개를 받았다. 조 회장이 사재를 포함해 약 700억원을 쏟아부어 얻은 성과다.

조 회장은 올해 두 번째 도전에 나섰다. 미쉐린으로 획득한 인지도를 기반으로 세계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 지난 3월 말 하와이 시장부터 두드렸다. 조 회장은 “세계 각국 미쉐린 별을 받은 식당들이 광주요의 그릇을 쓰기 시작했고, 작년부터 미국 온라인쇼핑몰 아마존에서도 판매하고 있다”며 “한식의 세계화는 이미 시작됐다”고 했다. 모두 이룰 수 없다고 하지만 다시 꿈을 향해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냐고 하자 그는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꿈을 갖고 미친 듯이 파고들되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승자가 돼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를 롯데월드타워에 있는 비채나에서 만났다.

▶하와이에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3월 말 미국 하와이 와이알라에 컨트리클럽 등에서 한국의 식문화를 알리는 ‘화요 하와이 만찬’을 열었습니다. 하와이를 거쳐 로스앤젤레스(LA)에도 다녀왔습니다. 올가을 하와이에 있는 미국 고급 백화점 니먼마커스의 식당에서 가온의 한식과 화요의 술, 광주요의 그릇을 선보일 계획도 세웠습니다. 이 식당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추천하는 칵테일과 요리 리스트에 화요와 고급 한식을 넣어 소개하는 겁니다. 하와이에서 성공하면 미국 전역의 니먼마커스 진출도 타진해 볼 생각입니다. 백인 상류층이 주로 이용하는 니먼마커스는 미국 전역 42개 도시에 지점이 있습니다. 하와이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면 미국 전체로 확산하기가 쉽습니다. 영업은 부딪혀서 소리를 들어봐야 진전이 있습니다. 머리로 아무리 해봤자 소용이 없죠.”

▶미쉐린가이드 별을 받은 뒤 변화가 있습니까.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2003년 고급 한식당 가온을 열었을 때 몽상가라고 했습니다. 다들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때 성공하면 천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화는 가장 어려운 길입니다. 그래도 그 길이 보여 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도자기라는 가업을 이어받았을 때 정해진 숙명이자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온과 비채나에 700억원을 쏟아부은 이유입니다. 가온과 비채나, 화요, 광주요는 한국의 식문화입니다. 미쉐린가이드에 오른 뒤 수익도 점차 좋아지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 미쉐린 별을 받은 식당들이 광주요의 그릇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작년부터 온라인쇼핑몰 아마존에서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한국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 5만달러, 6만달러가 되면 가온과 비채나를 찾는 이들도 더 늘어날 것으로 봅니다.”

▶화요를 만든 계기는 무엇입니까.

“고급 한식에 어울리는 고급 술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전통주 사업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3년간 전국의 술 장인을 수소문했습니다. 진로와 보배에서 각각 증류소주를 만들었던 소주업계 장인 고(故) 박찬영 선생과 김호영 선생, 문세희 화요 부사장을 영입해 2005년 초 명품 콘셉트로 화요를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박 선생을 처음 만난 날 보여줬던 직접 담근 술이 지금의 화요41입니다.”

▶화요 매출은 어떻습니까.

“매년 30%씩 판매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식당 이자카야에서도 일본 술 사케 대신 화요를 마시는 이들이 늘었습니다. 2010년 군 영내매점(PX)에서도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터닝포인트였습니다. 군 밖에서 한 병에 1만원 가까이 하는 화요가 PX에선 3000원대입니다. 가격이 싸니까 군인들이 마시기 시작했고, 부모님께도 선물했습니다. 이들이 제대 뒤에도 화요를 찾았습니다. 광고 없이 입소문만으로 널리 알려졌죠. 국방부를 설득해 군에서 강의도 했습니다. 강의한 부대에선 화요 매출이 크게 올랐습니다.”

▶작년 화요의 이익 15%를 직원들에게 나눠줬습니다.

[한경 인터뷰] 조태권 광주요 회장 "한국 食문화 상징하는 가온·화요·광주요… 올가을 美 공략한다"
“화요 이익 15%를 직원 수로 동일하게 나눠 지급했습니다.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광주요의 꿈은 직원들이 행복한 기업을 만드는 겁니다. 매일 퇴근할 때마다 사무실을 돌며 직원들과 손바닥을 마주칩니다. 스킨십을 통해 직원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회장에게도 주저하지 않고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이루고 싶습니다.”

▶주세를 바꿔야 한다고 4년간 15차례 청원했습니다.

“한국은 술 가격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인 ‘종가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원료와 포장, 재료비 등의 제조원가는 물론 광고, 영업, 인건비 등의 판매관리비가 모두 포함된 판매원가를 과세표준으로 해 주세를 부과합니다. 판매원가가 비쌀수록 세금이 불어나는 구조입니다. 이런 과세 구조에선 주류 사업자들이 고급 술 개발을 통한 가치 경쟁이 아니라 원가 절감을 통한 가격 경쟁에 힘쓰게 됩니다. 대기업의 희석식 소주는 해외에서 저가 원료를 구입하거나 주정을 수입해 제조원가를 낮추고 있습니다. 주류산업의 전반적인 질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어떻게 바꿔야 하나요.

“주류산업은 식문화산업의 주요한 축입니다. 주류산업의 하향 평준화는 국가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현 주세는 한국산 제품이 수입 제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수입 맥주가 국내 맥주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종가세 방식을 알코올 도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로 바꿔야 합니다. 2013년 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4년 넘게 약 15차례에 걸쳐 기획재정부, 국세청, 농림축산식품부, 법제처 등에 청원했습니다. 종량세를 반대하는 측에선 서민들이 즐겨 마시는 희석식 소주의 가격 상승을 우려합니다. 종량세를 도입한다고 해도 주종과 알코올 도수에 따라 차등세율을 적용하면 서민 술의 가격 변동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책 스크랩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지식은 저를 키우는 힘입니다. 책을 통한 간접경험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한 달에 두세 권의 책을 읽습니다. 하루에 15분씩 볼 수 있는 양으로 쪼개 요약합니다. 권당 10~40회 정도 나옵니다. 책을 다 읽은 뒤엔 요약한 내용을 다시 읽는 방식으로 같은 책을 다섯 번 읽기도 합니다. 아침마다 책 요약본과 기사 스크랩한 내용을 직원들과 공유합니다. 직원들의 성장을 독려하기 위해서입니다.”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꿈을 갖고 몰입하세요. 꿈이 없으면 안됩니다. 최고로 잘할 수 있는 자기 것을 만들어 미친 듯이 파고드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는 겁니다. 살아남으면 어느 순간 승자가 돼 있을 겁니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기업철학은 문화보국… 韓食에 700억 쏟아

‘문화보국.’ 조태권 광주요 회장의 철학이다. 그는 세대를 넘어 향유할 수 있는 문화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나라를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문화의 시작은 음식이란 생각에서 ‘한식의 세계화’에 약 700억원을 썼다.

조 회장은 1948년 경남 남해에서 부유한 집안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경기중학교 2학년 때 5·16 군사정변이 나 재일동포였던 부친의 재산을 몰수당했다.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도쿄에서 외국인고등학교(ASIJ)를 다녔다. 미국 미주리주립대 경영학과를 3년 반 만에 조기 졸업하고, 1974년 한국에 돌아와 대우에 입사했다. 30대 초반 그리스 지사장에 발탁됐고, 1982년 퇴직한 뒤 해외 정부를 상대로 한 플랜트 중개인으로 직접 뛰었다. 세계 최고 부호들과 어울리며 각 나라의 최고급 문화를 경험했다.

1988년 부친인 조소수 광주요 창업자가 타계한 뒤 가업을 물려받았다. 조 회장은 “도자기는 일상에서 쓰고 접해야 참된 가치를 얻는다”는 생각으로 전통자기의 대중화에 힘썼다. 선대로부터 전해받은 기술과 과학적인 연구 등을 통해 전통자기의 대량생산 시스템 구축에 성공했다.

고급 음식과 술이 있어야 고급 식기가 잘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해 최고급 한식당 가온(2003년)과 비채나(2012년)를 열었다. 또 고급 증류주 화요(2005년)를 선보였다. 조 회장은 “한식에 5000년의 이야기를 담아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는 것, 그것이 강력한 국가 브랜드를 만들고 문화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프로필

△1948년 부산 출생 △1973년 미국 미주리주립대 경영학과 졸업 △1988년~ 광주요 대표이사△2003년~ 화요 대표이사 △2009년~ 성북문화원 원장 △2012년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 무형유산 자문위원 △2018년~ 서울과기대 명예학장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