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개포동에 조성된 ‘로이킴 숲’
서울 개포동에 조성된 ‘로이킴 숲’
팬덤 문화가 진화하고 있다. 글로벌 팬들까지 확대되며 규모가 커지자 하나의 대형 팬클럽이 사라지고 나라마다 지역마다 소규모 팬카페로 대체되고 있다. 방탄소년단 등 주요 아이돌그룹 팬들은 리더 없이 개별적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한다. 중앙집중형에서 분산형 네트워크로 변화하는 셈이다.

팬들의 연령대도 예전 10대 중심에서 20~30대로 높아졌다. 이들은 가수의 노래를 단순히 즐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내 가수는 내가 키운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해당 가수 이름으로 광고는 물론 기부까지 한다. 워너원 팬들은 멤버 강다니엘, 박지훈의 이름으로 유기견 보호센터 및 나눔의 집, 어린이병원 소아병동 등 다양한 단체에 1000만원 상당의 돈을 기부했다.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도 100만달러를 이틀 만에 모금해 기아에 신음하는 아동을 돕도록 유니세프에 전달했다.

팬들은 가수의 생일을 기념해 숲을 조성하기도 한다. 소녀시대, 동방신기, 샤이니, 인피니트, 엑소, 신화 등 다수 인기 그룹의 숲이 나라 안팎으로 많다. 브라질에는 ‘서태지 숲’이 2012년 완성됐고, 중국에는 현지 팬들이 만든 ‘신화 숲’이 지난해 조성됐다. 이 정도면 팬이 특정 아이돌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거나 다름없다. 글로벌 사회에 공헌한다는 이미지 메이킹까지 하고 나서는 것이다.

팬들이 가사를 번역해 돌리거나 방송사에 노래를 신청하는 운동도 벌인다. 방탄소년단의 아미들은 노랫말을 영어나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뜻을 공유했다. “노랫말이 가슴에 와닿기 때문에 팬이 됐다”는 외국 팬들의 응답이 많은 이유다. 또한 미국 아미들은 50개 주에서 라디오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힘을 모았다. 각 지역 방송사를 조사해 공유한 뒤 방탄소년단 노래를 틀어달라고 전화와 엽서 보내기 운동을 벌였다. 이런 노력이 최근 방탄소년단의 앨범 ‘페이크 러브’가 빌보드 200차트 1위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팬덤이 라디오와 TV 등 대중문화를 움직이는 하나의 축이 된 것이다. 아미 일원이자, 한 기업의 임원인 서경민 씨(43)는 “아미들은 성숙한 모습으로 응원하려 한다”며 “팬이라고 떠들지 않고 일반인 코스프레(흉내내기)를 하면서 조용히 지원한다”고 말했다.

2016년 Mnet ‘프로듀스 101’은 팬들을 컨슈머에서 프로슈머로 진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시청자를 ‘국민 프로듀서’로 참여케 해 온라인 투표 등을 통해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의 데뷔를 성사시킬 수 있는 권한을 줬다. 요즘 팬들은 더 이상 기획사가 내놓는 홍보수단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프로듀싱에 참여해 기획사와 함께 스타로 만들어 나가고 싶어 한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