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갑 한국전력 사장(맨 오른쪽)이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제는 전기료가 싸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전 제공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맨 오른쪽)이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제는 전기료가 싸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전 제공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67)은 최근 A지역본부장을 전남 나주본사로 급히 불렀다. 스마트팜에서 바나나 등 농작물을 키운다는 신문기사를 읽고서다.

“원가에 턱없이 못 미치는 농업용 전기로 바나나 농장을 운영하는 게 말이 됩니까? 설비 교체비용을 대줄 테니 다른 연료를 쓰도록 유도해보세요.”

김 사장이 예민하게 반응한 건 회사를 둘러싼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아서다. 작년 상반기에만 2조3097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한전은 올해 같은 기간 5000억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정부가 ‘예방점검’ 명목으로 원전 10여 기를 한꺼번에 세우면서 한전의 전력 구입단가가 높아진 게 가장 큰 원인이다. 26일 세종시에서 한 기자간담회에서도 김 사장은 “이제는 전기료가 싸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석유 유연탄 가스 등 발전 원료의 국제가격 변동에 따라 전기요금을 자동 조절하는 연료가격 연동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다른 연료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제조업 설비마저 전기에만 의존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에선 30여 개국이 이미 연료가격 연동제를 시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전은 2011년에도 연료가격 연동제를 도입하려고 공론화한 적이 있다. 전기와 같은 에너지인 도시가스는 원료값과 연동해 요금이 2개월마다 바뀌는 구조라는 점에서다. 하지만 물가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정부 판단에 따라 백지화됐다.

김 사장은 지난 4월 취임 직후 비상경영을 선언한 뒤 경비를 20~30% 삭감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투자는 원점에서 재검토하도록 했다. 그는 “공기업 특성상 원가 계산에 취약한 측면이 있는데 투입비용 대비 효율을 철저하게 따지도록 했다”며 “다만 투자 시점만 일시 조절하는 꼼수를 부리는 건 안 된다”고 했다.

수개월 새 한전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실용성을 우선시하는 김 사장의 업무 스타일 때문이다. 보고 내용을 출력하지 않고 김 사장에게 이메일로 보낸 뒤 구두로 설명하는 일이 많아졌다. 보고자가 임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하는 것은 확 줄었다. “보기 좋은 자료를 작성하는 데 힘 빼지 말라”는 김 사장 지시에 따른 변화다.

다음달 초 발표할 이사·본부장 승진 인사를 놓고선 사내 공모를 개시했다. 한전 창사 이후 처음이다. 지원자 40여 명은 김 사장과 약 30분씩 면담하면서 “자신이 왜 승진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직원 수 2만1600여 명으로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은 외부 수혈도 준비하고 있다. 김 사장은 “격변하는 미래 디지털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 사장보다 월급이 많은 각 분야 전문가를 여러 명 외부에서 데려올 생각”이라며 “미국 실리콘밸리에도 헤드헌터를 보내 적임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선 각종 정보를 가공하는 5년차 기술자 연봉이 30만달러 정도인데 우리는 이보다 더 많이 줄 수도 있다”고 했다.

김 사장은 “31년 동안 공직생활을 한 뒤 11년간 하이닉스반도체 지멘스 등 민간에서 일했는데 한전에서의 지난 2개월이 가장 바빴던 것 같다”며 “사우디아라비아 등 원전 수출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이달 초엔 한전 자사주 1000주를 매입했다. ‘책임경영’ 차원이다. 그는 하이닉스 사장 시절이던 2007년부터 3년간 10여 차례 하이닉스 자사주를 산 적이 있다.

조재길/성수영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