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경북 김천 지역구에서 송언석 전 기획재정부 2차관이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당선되자 기재부 공무원들은 짙은 한숨부터 내뱉었다. 이미 추경호 김광림 이종구 의원 등 기재부 출신 선배들이 야당에 포진해 있는데 자신들의 상황을 잘 아는 ‘공격수’가 한 명 더 늘었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과거에는 기재부 출신이 주로 여당 정책위원회 의장이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를 맡아 정부와 국회의 가교 역할을 했다”며 “정부 추진 법안이나 예산안, 세법 개정안 등이 국회를 통과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서는 기재부 OB(올드보이의 약자로 퇴직자를 의미)들이 대거 야당에 포진해 오히려 정부 공격수로 돌변했다. 기재부 1차관 출신으로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을 지낸 추경호 의원이 대표적이다.

기재위 한국당 간사인 추 의원은 지난해 정기국회 때 정부의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에 대해 “국가 경제와 재정 운용의 기본 원리를 무시한 것”이라며 반대논리를 폈고, 법인세 인상과 관련해서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한다”고 정부를 공격했다. 올 들어 기재부가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추진할 때는 “초과 세수를 국가채무 상환에 쓰기보다 선심성 예산으로 낭비하려 한다”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기재위원 중 가장 까다롭게 생각하는 사람도 추 의원이라는 후문이다. 추 의원(행정고시 25회)은 김 부총리(26회)의 행시 선배이기도 하다. 추 의원은 20대 국회 후반기에도 계속 기재위에서 활동하길 희망하고 있다.

김광림 의원은 그나마 덜한 편이다. 김 부총리와 같은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김 부총리가 초임 사무관 때 김 의원은 과장이었다. 재무부 출신인 이종구 의원은 작년 12월 기재위 조세소위에서 “10년 동안 세법 심사를 했는데 이번 세제실팀이 최악”이라며 “20조원이나 세수가 늘었는데 작년에 올린 소득세를 또 올리고 법인세도 이유 없이 더 걷겠다고 하니 국민이 납득하겠느냐”고 질책해 기재부 후배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송언석 의원은 경제예산심의관 예산총괄심의관을 거쳐 예산실장, 2차관까지 지낸 ‘최고 예산통’이다. 작년 6월까지 차관으로 근무해 기재부 사정을 누구보다 훤히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예산실이 초긴장 상태다. 그는 당선되자마자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며 칼을 갈고 있다. 기재위가 아니라 국토교통위원회를 희망하고 있지만 국토위 역시 막대한 예산을 다루기 때문에 기재부 공무원들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상임위원회다.

이들 의원은 오는 9월 시작되는 정기국회를 벼르고 있다. 기재부가 내년에도 재정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데다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종합부동산세 인상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추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시장이 좋지 않은데 세금을 왜 더 거둬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래서 경기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제대로 나오겠느냐”고 비판했다.

8월 말부터 국회에 세법 개정안과 예산안을 차례로 제출해야 하는 기재부 세제실과 예산실 공무원들은 난감한 상황이 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여당에 정부를 도와줄 전문가가 드문 상황에서 불과 몇년 전까지 상사로 모셨던 OB들이 야당에서 정면 공격하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했다.

이태훈/박종필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