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션 특허 전쟁' 7년 만에 종지부
아모레퍼시픽의 쿠션팩트 특허가 7년 만에 무효로 결론났다. 대법원이 2015년부터 시작된 ‘쿠션 전쟁’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연간 쿠션으로만 1조원 이상 매출을 내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으로선 ‘아쉬운 판결’이지만 국내 화장품업계 전체로 보면 K뷰티의 핵심 제품인 쿠션 시장이 더 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법원의 반전 “진보성 결여됐다”

아모레퍼시픽과 코스맥스 간 쿠션팩트 소송전은 2015년부터 시작됐다. 2015년 10월 코스맥스와 국내 화장품업체 다섯 곳(네이처리퍼블릭, 토니모리, 에이블씨엔씨, 투쿨포스쿨, 에프앤코)은 아모레를 상대로 특허심판원에 특허무효 심판을 청구했다. 아모레 역시 2016년 5월 서울중앙지법에 코스맥스를 상대로 특허권 침해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쿠션 특허 전쟁' 7년 만에 종지부
1심에선 아모레퍼시픽이 승소하며 승기를 잡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난 2월 특허법원이 특허무효소송과 침해소송을 병합처리하면서 코스맥스 손을 들어주는 대반전이 일어났다.

비슷한 기술이 오래전에 나왔고 기술적 가치도 크지 않다는 코스맥스측 대리인(법무법인 세종)의 논리를 특허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세종은 화학분야 특허 전문가들을 동원해 법원을 집요하게 설득하면서 아모레퍼시픽의 특허명세서가 기술적으로 틀렸다는 연구기관의 실험결과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아모레퍼시픽 기술이 ‘진보성(기존 기술로부터 쉽게 발명할 수 없는 독창성)’이 결여됐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의 높은 진보성 기준이 확인된 만큼 그동안 증가추세였던 화장품 특허분쟁도 사그라들 전망이다. 아모레퍼시픽 등 대형 화장품 업체들은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특허를 등록해 경쟁 업체의 신규 시장 진입을 막아왔다. 작년 아모레퍼시픽이 특허침해 손해배상 등 소송 32건에 쏟은 비용만 58억원 가까이 된다.

◆‘쿠션 종주국 지위’ 이상 없을까

‘쿠션 원조’를 자처해온 아모레퍼시픽은 코스맥스의 국내 쿠션 제조를 반대할 명분을 잃었다. 코스맥스 측은 해외에 등록돼 있는 아모레퍼시픽의 쿠션 특허 무효 소송을 제기할지 검토 중이다. 코스맥스 관계자는 “이미 국내에서 특허 무효로 결론났기 때문에 굳이 해외에서 소송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국내 업체들이 다같이 쿠션 시장을 키우는 긍정적 방향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우레탄폼 소재와 관련된 특허 소송은 무효로 결론났지만 세부적인 쿠션 관련 특허를 국내에서는 149건, 해외에서는 225건을 보유 중”이라며 “쿠션의 독창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선 이번 판결로 한국이 쿠션 종주국 역할을 뺏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동남아에서는 가짜 K뷰티 브랜드가 생겨나고, 미국에서는 세포라 K뷰티 코너에 일본 브랜드가 입점하는 등 한국 화장품은 전방위로 공격받고 있다”며 “중국 업체들이 싼 값에 유사상품을 찍어내기 시작하면 K뷰티가 구축해온 신뢰도까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아모레퍼시픽에 로열티를 내고 쿠션을 제조해온 업체가 이 판결을 빌미로 기존 로열티 계약이 끝나면 더 이상 수수료를 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루이비통 로레알 등 유명 브랜드에서 로열티 없이 쿠션을 생산하며 K뷰티를 위협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법원이 확실한 기술적 우위 없는 특허를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공정한 경쟁 구도가 형성돼 쿠션 시장이 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화장품 회사 관계자는 “미국의 화장품 업체인 베네피트가 ‘틴트’를 처음 개발했다고 해서 다른 업체들의 비슷한 제품 판매를 막지는 않았다”며 “이로 인해 틴트 시장이 넓어졌고, 결과적으로 베네피트 매출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수빈/안대규/민지혜 기자 lsb@hankyung.com